분류 전체보기

(2339)
[공지] KHAN으로 보는 역사 블로그 운영 중단 안내 안녕하세요. KHAN으로 보는 역사 블로그 관리자입니다. '경향신문 오피니언 섹션 페이지'의 활성화를 위해 2022년 12월 19일 포스팅을 마지막으로 'KHAN으로 보는 역사 블로그' 운영을 중단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KHAN으로 보는 역사 블로그에 게재되었던 글은 '경향신문 오피니언 섹션페이지' 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KHAN으로 보는 역사 블로그에 찾아와주시고 관심 가져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더 향상된 서비스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피니언 섹션 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khan.co.kr/opinion
쫄지마, 인문학 자문 회의란 데를 참여할 때가 있다. 나 같은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고고학, 건축사,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참여하는 역사 관련 사업의 회의다. 문헌을 다루며 연구하는 입장에서 고고학과 건축사는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여기서 ‘낯설지 않다’는 말은, 일부는 제대로 알아듣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들을 필요가 있는 말인가 아닌가 정도를 가늠한다는 뜻이다. 얼마 전 참여한 자문 회의도 그러했다. 고고학, 건축사 분야 관련 얘기를 들으면서 조금은 알아듣고 나머지는 흘려들으며 넘기고 있었는데, 소프트웨어 발표가 시작되며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일단 알파벳 대문자 약자가 많은데,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이 없었다.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까지는 알겠으나, 세 글자 대문자 알파벳이 난무하자 기가 죽..
노인의 열 가지 좌절 송나라 주필대가 라는 책에서 소개한 ‘노인의 열 가지 좌절’이 있다. 첫째, 최근 일은 기억하지 못하고 먼 옛날 일은 기억한다. 둘째, 가까운 곳은 보이지 않고 먼 곳은 잘 보인다. 셋째, 울 때는 눈물이 나오지 않고 웃을 때 눈물이 나온다. 넷째, 밤에는 잠을 못 자는데 낮에는 잠이 온다. 다섯째,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꾸 움직인다. 여섯째, 부드러운 음식을 마다하고 딱딱한 음식만 찾는다. 일곱째, 자식은 아끼지 않고 손주만 아낀다. 여덟째, 큰일은 묻지도 않고 사소한 일에 잔소리한다. 아홉째, 술은 적게 마시고 차는 많이 마신다. 열째, 따뜻할 때는 나가지 않다가 추우면 나간다. 노안과 단기기억 감퇴는 노화의 대표적 증상이다. 눈물이 흐르지 않는 건 눈이 건조해서고, 웃거나 재채기할 때 눈물을 흘리는..
조선시대 언론과 권력 한국 언론에 관한 뉴스들이 국내외 언론에 주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위한 전용기 탑승에 한 방송사가 배제되었다거나, 수년째 청취율 1위를 기록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인해 그 방송국 운영비를 제공해 오던 서울시가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언론 자체가 뜨거운 사회적·정치적 이슈였던 것은 조선 시대부터 있던 오래된 전통이다. 조선 시대 최초의 사화(士禍)인 무오사화(1498)는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연산군의 테러였다. 무오사화로 죽거나 귀양을 간 사람들 다수가 당시 언론을 주도했던 관리와 지식인들이다. 무오사화는 발발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되었다. 연산군은 조선의 10번째 왕으로 건국 102년 만에 즉위했다. 그는 이전 어떤 조선왕도..
수학여행과 쇼트커트 수학여행을 하루 앞두고 아이가 미용실에 다녀왔다. 이쁘게 다듬은 머리를 보자, 문득 나의 수학여행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을 앞두고 나는 큰 고민에 빠졌다. 처음 가보는 단체여행에 설레어하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나의 긴 머리가 이 여행의 짐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내 머릿결은 적어도 이틀에 한번은 감아줘야 하는데, 여러 명이서 방을 쓸 것이니 분명 머리 감기가 힘들 게 아닌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단호한 결정이 필요했다. 머리카락을 자르자! 그것도 감기 쉽게 쇼트커트로! 그때까지 긴 머리밖에 안 해보긴 했지만, 머리카락 길이에 연연해하는 성격이 아니기에 그다지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시원하게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등교한 날, 학교 선생님들이 ..
무한책임은 ‘책임 없음’과 같다 1126년, 금나라 대군이 송나라 수도 개봉을 향해 진격해왔다. 기다리는 구원병은 소식이 없고, 도성을 지키는 군사는 1000여명에 불과했다. 이대로라면 수도의 도성이 함락당하는 사태는 피할 수 없었다. 당시 도성 교외의 창고에는 대포가 500문이나 보관되어 있었다. 만약 도성으로 가지고 온다면 수비에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가지러 가지 않았다. 관련 부서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겼기 때문이다. 국방부에 해당하는 ‘병부’는 사령부 역할을 맡은 ‘추밀원’이 가져와야 한다고 떠넘기고, 추밀원은 무기를 관리하는 ‘군기감’이 가져와야 한다고 떠넘겼다. 군기감은 대포가 수레에 실려 있으니 수레를 관리하는 ‘가부’가 가져와야 한다고 떠넘기고, 가부는 대포가 창고에 있으니 창고를 관리하는 ‘고부’가 가져..
부고문 요즘은 SMS(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로 부고 소식을 접한다. 거기에는 가족관계, 빈소, 발인 날짜, 장지, 부조금 입금 은행계좌가 적힌다. 망자가 어떤 이였는지 알기는 어렵다. 죽음에 관한 오늘날의 양상은 옛날과는 달라졌다. 일상에서 죽음은 소거되어, 병원 장례식장을 크게 넘지 못한다. 하지만 전통시대에는 죽음이 일상에 섞여 있었다. 자기 아이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 부모는 거의 없었고, 가족과 친구들의 죽음은 잦았다. 죽음은 삶과 공존했다. 거의 모든 옛사람들의 문집, 즉 그들이 평생 썼던 시나 문장을 모은 책에는 망자와 관련된 시와 문장들이 적지 않다. 다음은 연암 박지원이 죽은 맏누이를 위해 지은 묘지명 일부이다. “누이는 16세에 덕수 이씨 이택모 백규(이택모의 자(字))에게 ..
답사가 키워내는 인간형 매해 3월 말, 9월 말이면 전국의 사학과가 전국을 떠돈다. 정기답사 시즌이기 때문이다. 같은 때 돌아다니다 보니 유적지에서 서로 만나는 일도 흔하다. 안면 있는 교수들은 반가움을 나누고, 학생들은 자료집을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 이 시즌에 다 같이 움직이는 건 별 이유가 없다. 그저 개강 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고, 본격적인 꽃놀이, 단풍놀이 전에 가야 전세버스와 숙소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들이 놀러 다니지 않는 시즌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춘계 답사 때는 꽃샘추위로 추위에 떨기 일쑤고, 추계 답사 때는 늦더위에 시달리거나 태풍을 만나기 일쑤다. 날씨도 안 좋고 학점을 따로 부여하는 강좌도 아니며, 교수가 준비하지도 않는다. 교수는 조언만 할 뿐, 답사지 선정, 숙소 및 식사 장소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