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강자와 약자라는 이분법

아첨은 남에게 잘 보이려는 행위다. 대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윤기(1741~1826)에 따르면 당시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아첨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주인은 노비에게 아첨하며 행여 심기를 거스를까 걱정하고, 상관은 부하에게 아첨하며 행여 인기를 잃을까 두려워한다. 정승이 일개 야인에게 아첨하여 명성을 얻으려 하고, 사대부가 시정잡배에게 아첨하여 이득을 보려 한다. 그 결과 아랫사람과 윗사람이 “친구처럼 우스갯소리를 주고받고 싸움하듯 소리를 질러댄다”(<무명자집>). 윤기는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고 한탄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신분제도가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신분제는 양반, 중인, 평민, 천민 4계급의 피라미드형 구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은 이보다 복잡하다. 예컨대 박종악(1735~1795)은 당시의 신분구조를 7계급으로 보았다. 첫째 사대부(士大夫), 둘째 평조양반(平調兩班, 평범한 양반), 셋째 향반(鄕班), 넷째 품관(品官), 다섯째 중인(中人)과 서자(庶子), 여섯째 이교(吏校, 아전과 군교)와 평민(平民), 일곱째 공천(公賤)과 사천(私賤)이다(<수기>). 이 밖에도 여러 가지 구분이 있다. 요컨대 양반이라고 다 같은 양반이 아니며 천민이라고 다 같은 천민이 아니었다.

우선 양반부터 보자. 최상층에서 권력을 독점하고 세습하는 벌열(閥閱)이 있는가 하면, 지역사회를 벗어나면 양반 대접을 받기 어려운 향반(鄕班), 평민이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한 잔반(殘班)도 있다. 양반은 유동적이다. 지금도 영남에 가면 몇몇 집안이 수백년째 양반임을 내세우지만, 솔직히 이 집안들이 조선시대에 전부 양반 대접을 받았는지는 의심스럽다.

 

양반 다음 신분이 중인이다. 의관·역관 등 전문직, 관청의 실무를 담당한 아전이다. 아전이라고 하면 양반에게 굽실거리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여 양반들을 굽실거리게 만든 아전도 드물지 않았다. 공직에 임명된 양반은 실무에 능숙한 아전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아전이 마음만 먹으면 상관을 쫓아내는 것도 가능했다. 중앙 관서의 아전들은 모두 벌열가의 청지기였기 때문이다(<이재난고>). 지방 관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정약용에 따르면 전남 강진의 아전 자리는 원래 300냥에 불과했는데, 30년도 지나지 않아 30배 넘게 폭등한 1만냥에 거래되었다(<목민심서>). 그만큼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천민은 신분구조상 가장 아래에 위치하지만, 무거운 납세와 군역 부담에 시달리는 평민보다 처지가 나은 경우도 있었다. 국가 소유의 공노비는 관의 위세를 업고 횡포를 부렸으며, 개인 소유의 사노비 역시 주인에게 순순히 복종하지만은 않았다. 여차하면 도망간다. 잡아오면 되지 않냐고? 국가는 개인 소유의 도망 노비를 잡는 데 개입하지 않았다. 잠적한 채무자를 경찰의 도움 없이 찾는다고 생각해보라. 사실상 불가능하다. 도망 노비를 잡으러 간 주인이 거꾸로 살해당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았다. ‘추노’는 드라마에 불과하다.

 

이처럼 신분제도가 무너져 가는 사회에서는 신분이 높다고 권력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주인이 노비에게 아첨하고 상관이 부하에게 아첨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결국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아첨한다’는 윤기의 탄식은 신분제가 무너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위계질서에 집착하는 양반의 아쉬운 소리에 불과하다. 조선의 신분제도는 갑오개혁으로 공식 폐지되기 전에 이미 와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선이 신분제 사회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양반이 억압과 착취의 주범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양반은 전부 특권층이며 나머지 계층은 사회적 약자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본디 조선시대의 신분구조는 유동적이었으며, 같은 신분이라도 그 존재양상은 천차만별이었다. 신분의 높고 낮음은 강자와 약자를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오늘날의 소속 집단 역시 강자와 약자를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동일한 집단 내에서도 다양한 양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라고 일컬어지는 노동자도 여성도 청년도 층차가 다양하다. 하지만 개별적 차이를 무시하고 소속 집단에 따라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고, 나아가 가해자와 피해자로 단정하는 이분법적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은 선과 악, 아군과 적군, 진보와 보수, 종북과 애국, 심지어 예수천국과 불신지옥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난무하는 수많은 이분법과 다름없이 편협하고 폭력적이다. 이처럼 단순무식한 이분법으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다단한 세계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강자와 약자는 추상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다.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강약의 이분법은 또 다른 억압이며 뜻하지 않은 피해자를 만들어낼 우려가 있다. 다양성과 상대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강자와 약자의 편가르기에 앞장서는 현실은 더욱 우려스럽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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