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교육과 돈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교육기관으로 향교와 서원이 있다. 향교는 정부가 세운 것이고, 서원은 지역의 유력자들, 양반들이 세웠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의 변천은 그 자체로 조선왕조 사회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교육과 공동체의 본질적 관계는 조선시대와 지금이 다르지 않다.


조선 정부는 처음부터 교육을 강조했다. 태종 때부터 향교를 모든 행정단위에 세웠다. 이런 노력은 세종 임금 때 거의 완성을 본다. 300개 넘는 전국의 행정단위에 향교가 차례로 세워졌다.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부재정에서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두 분야가 교육과 국방이다. 사익을 목적하는 기관이 절대 계속할 수 없는 일이다.


향교를 운영하는 데에는 많은 돈이 들었다. 건물을 지어야 하고, 공무원인 선생 즉 교관을 파견해야 했다. 학생들은 기숙을 했다. 정부는 교육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야 했고, 학생들의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인력과 물자를 지급했다. 향교는 세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공동체와 교육의 공적 가치를 유지하는 데에 이렇게 많은 돈이 들어갔다.


많은 돈이 꾸준히 들어가기에 조선 건국 초기인 15세기에는 사립학교인 서원이 세워질 수 없었다. 민간에 그런 부(富)가 축적되어 있지 않았다. 최초의 서원은 오늘날 경북 영주에 있는 소수서원이다. 1543년(중종 38년)에 세워졌다. 조선이 건국된 후 150년쯤 지나서 일이다. 뒤이어 서원들이 세워졌다.


서원이 세워지고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민간에서 이를 감당할 만한 부가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15세기에 조선이 대단한 경제성장을 이룩했기에 가능했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매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많지 않았다. 지력(地力)을 유지할 수 있는 시비법(施肥法)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5세기 초중반에 걸쳐서 농업생산력이 크게 발전했다. 최초의 농서 <농사직설>(1429·세종 11년)은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한 증거이다. 한 해 걸러 농사를 짓던 땅이 매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면 200%, 두 해 걸려 농사를 짓던 땅이 매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면 300%의 생산성 향상을 뜻한다. 더구나 경작 면적 자체가 늘어났다.


한국은 1960~70년대에 정부 주도로 엄청난 경제성장을 했다. 그 최종적 결과 중 하나가 ‘재벌’의 탄생이다. 비판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국가적 규모의 어떤 경제성장도 그 자체로 사람들을 골고루 잘살게 만들지는 않는다. 15세기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농업생산력 증대는 지주들을 탄생시켰다. 그 지주들의 가장 강력한 소망은 자신의 아들들을 정부 관료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과거를 봐야 했고, 교육을 받아야 했다.


아무리 정부라고 해도 가시적 결과 없이 교육에 많은 돈을 투입하는 일을 계속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15세기 후반, 16세기가 되자 향교교육은 점차 부실해졌다. 그러자 부유해진 지주들, 지방 양반들은 자신들이 직접 돈을 내서 학교를 만들었다. 서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향교는 천천히 교육 기능을 잃었다. 영조 때가 되면 중앙정부가 향교에 교관을 파견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훨씬 전에 일어난 일을 이때 공식화한 것이리라.


서원의 영광도 계속되지는 않았다. 이미 17세기가 되면 지방 출신자들은 과거에 잘 붙지 못했다. 생원이나 진사 같은 시험은 그래도 나았지만, 문과 즉 대과 시험에서 서울 출신자들 비중은 압도적이었다. 국립, 사립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울의 벼슬아치들은 독선생을 붙여서 자식들의 과거시험을 준비시켰다. 그들은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조선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들을 구해왔고, 그것들은 아들과 조카들의 과거시험에 쓰였다. 이미 오래전에 정부는 돈이 많이 드는 교육을 포기하고 대신에 과거시험이나마 공정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이해는 된다. 시험 관리가 교육보다는 돈이 훨씬 덜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교육의 공공성, 나아가서는 사회적 공공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온 나라가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자녀의 대학, 대학원 입학 문제로 떠들썩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아무도 정부 책임을 묻지 않는다. 사회경제적으로 어느 층위에서 태어나든지, 개인은 주어진 제도 안에서 삶을 꾸려나가게 마련이다. 제도의 문제를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여, 그것을 윤리적 차원에서 단죄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다소 시간이 지났지만 충남대 오길영 교수에 따르면 경북대보다 연세대에 국고 지원액수가 더 많다고 한다(‘국립대 기성회계 문제의 해법’, 한겨레, 2012년 2월9일자). 경북대를 편들거나 연세대를 싫어해서 하는 말이 당연히 아니다. 좋은 사립대학들에 정부가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 나라의 최고 교육과정을 사회적 공공성에 맞게 이끌어야 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누구나 가고 싶은, 공공성이 구현된 좋은 국립대학을 만드는 것은 정부 책임이다. 관건은 돈이다. 좋은 대학은 예산이 많은 대학이고, 그것을 온전히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쓰는 학교이다. 정부는 대학시험 관리가 아니라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교육의 공적 가치를 지키려면 그에 걸맞게 돈을 써야 한다.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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