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기고]‘중도유적’ 갈아엎고 레고랜드 지어야만 하나

지난해 12월 초 중도유적 현장을 방문했을 때 넓은 벌판에 높은 펜스를 쳐놓은 채 레고랜드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지상에 대형 철근콘크리트 기둥이 세워지고 있었다. 우려했던 문화재 대참사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중도유적은 1980년부터 1984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5차례에 걸쳐 발굴해 270여기의 유구를 확인하고 중도발굴보고서를 5권이나 내놓은 유적이다. 2010년까지 강원대학교박물관과 한림대학교박물관 등이 여러 차례 발굴·조사한 결과,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삼국시대 유적이 확인된 ‘통사적(通史的)’인 유적이다. 특히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주로 분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고고학 조사에 의하면 신석기시대 후기에 서해안 수위 상승으로 한강 하류 지역에 물이 차기 시작하면서 서울 지역을 포함한 한강 하류의 인류가 지대가 높은 한강 중상류 지역인 춘천 지역으로 이동해 생활하면서 청동기시대의 사회집단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2011년 최문순씨는 강원도지사에 당선되자마자 춘천 중도에 서양의 놀이시설인 레고랜드(Legoland)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중도 레고랜드 부지 24만98㎡를 발굴한 결과, 청동기시대의 방어 시설인 둘레 400m 크기의 환호(環濠)를 비롯해 청동기시대 주거지·고상가옥·저장 구덩이·경작지 등 3000여기의 유구와 160여기의 돌무덤이 확인되었다. 이들 유적에서는 비파형동검과 선형동부, 옥착, 옥부 등 청동기시대(고조선 시기) 지배층의 유물이 약 1만점의 석기·토기와 함께 출토되었다.

 

연합 발굴단의 대표는 7개 발굴기관이 4년여 합동 발굴한 이 유적에 대해 “한국 고고학 역사상 최대의 마을 유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별도의 보존조치 없이 조사지역에 예정된 사업(레고랜드)을 진행해도 무방하다”는 황당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발굴단의 정식 발굴보고서도 나오기 전에 레고랜드 건설공사가 시작되었다.

 

2014년 7월 발굴현장 검토회의와 자문회의에 이어 9월 문화재위원회에서 50여기 지석묘군(群)을 이전·복원하고 나머지는 메우고 건물을 짓는 안을 가결하자, 문화재청은 즉시 레고랜드 건설을 허가했다. “이런 유적과 유물은 국내외 각지에 널려 있어 철거하고 개발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의 답변을 ‘눈 한번 깜짝 않고’ 내놓았다.

 

레고랜드 건설공사가 시작된 이 지역은 넓이 240㎡ 안에 돌로 쌓아 만든 고인돌무덤(지석묘) 50여기가 조성된 매우 특징적인 청동기시대 지도자급의 대단위 지석묘군이다. 현대건설이 2021년 5월 완공을 목표로 먼저 공사를 시작한 곳에는 지상 6층의 대형 호텔이 들어서게 된다. 50여기의 지석묘를 철거한 자리에 지하 10m 아래 암반까지 파일을 박고 콘크리트 기초공사를 한 다음 대형 철근콘크리트 기둥이 올라가고 있다. 레고랜드 건설공사가 완공되면 중도유적은 영원히 사라진다.

 

주관사인 영국 멀린사와 강원도는 중도유적의 가장 중심지역인 대단위 지석묘군이 있는 곳을 레고랜드의 중심지역으로 설정했다. 지석묘군이 발굴되자마자 레고랜드의 핵심 건물(처음 계획은 15층 호텔)을 짓기로 계획하고 기초공사에 장애가 되는 지석묘군을 제거하는 작업을 적극 추진했다. 마침내 지석묘군을 철거·이전하고, 청동기시대 3000여기의 유구를 모두 매립해 관광 유흥시설 건설 허가를 받아냈다. 그동안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장, 국무총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에게 10여 차례 ‘춘천 중도유적 내 레고랜드 건설 중지 청원서’를 제출했지만 번번이 묵살당했다. ‘문화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럴 수는 없다.

 

이웃 중국은 춘천 중도유적과 비슷한 랴오닝성 우하량 적석총 유적을 대형 유리돔으로 씌워 보존하고 있다. 일본은 구주의 요시노가리 유적지에 산업단지를 건설하려고 했다가 대단위 유적이 발견되자 중지하고 사적공원을 조성했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대통령의 결정만 기다린다. 또 외국 기업이 우리의 문화유산을 말살하고 외제 장난감 놀이시설을 만드는 사업을 당장 중단하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는 일에 모든 국민이 동참하기를 바란다.

 

<이형구 동양고고학연구소장 선문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