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기본소득과 조선시대 개혁

코로나19 대응책으로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은 몇 가지 중요한 사회적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그중 아마도 나중까지 기억될 것은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 문제를 본격화시킨 점일 것이다. 기본소득이 긴급재난지원금 때문에 구체화된 것은 다소 우연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사에서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은 드물지 않다.

 

사람들이 말하는 기본소득 개념이 똑같지는 않다. 청년들에게만 주자는 의견도 있고, 형편이 어려운 가구들에 대해서만 기준을 정해 소득을 보전해주자는 의견도 있다. 큰 파급효과가 예상되는 정책에 대해 이런 논란이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보수정당’이라 자타가 말하는 야당도 최근 기본소득을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은 이제 한국 사회의 확고한 정책 의제로 자리 잡은 듯하다.

 

한때 역사학자들 중에도 조선왕조가 500년 넘게 이어졌던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왕조 중간쯤에 시민혁명이 일어나 우리도 영국 등 유럽 ‘선진국’처럼 근대세계를 열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사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조선왕조가 일본에 식민지로 떨어졌고 그 연장선상에서 남북의 분단과 전쟁을 경험했고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500년 넘게 지속된 왕조가 식민지로 끝났다고 하여 그 책임을 왕조 자체에 묻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조선왕조는 놀라운 개혁으로 시작되었고, 다시 놀라운 개혁으로 그 생명을 이어갔다. 조선왕조 건국의 시작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다. 그런데 위화도 회군 직후 개혁세력이 곧바로 시작한 일이 바로 세금제도 개혁이다. 이것은 100년 넘게 고려의 백성들 대부분을 고통스럽게 했던 문제를 해결한 개혁이다. 이것은 당시 가장 강력했던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을 불법화한 일이다. 집행된 개혁은 논의되던 여러 개혁 방안들 중에서도 가장 개혁적인 안이었다. 개혁 완료 후 1년 뒤에 조선이 건국되었다. 개혁 추진세력이 바로 건국의 주인공들이다.

 

조선왕조 역사에서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전반은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임진왜란 때 중국과 일본도 조선에서 뒤얽혀 싸웠고, 전쟁 후 정치 쿠데타 인조반정이 일어났고, 이후 청나라가 두 번 침략했다. 그 후 전쟁에 참전했던 중국과 일본에선 왕조와 정치체제가 바뀌었다. 흥미롭게도 정작 전쟁터였던 조선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떤 정부도 하기 어려운 최대치의 개혁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조선이 맞았던 역사의 격랑을 잠재울 정도의 커다란 개혁이었다. 세금을 내는 기준과 사람들 자체를 바꿨고, 기존 제도에서 거대한 불로소득을 오랫동안 누렸던 막강한 권력자들을 체계적으로 걸러냈다.

 

고려 말 세금제도 개혁이나 조선 중엽 대동법은 입법 이전엔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거의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제도의 반대자들 중엔 그 취지를 긍정하면서도, 그것이 너무나 이상적이기에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반대했던 사람도 적지 않다. 조선은 그런 제도 개혁을 성공시키며 건국하고 또 나라의 생명을 이어갔다. 조선시대 유산엔 놀라운 중흥(中興)과 개혁의 전통이 있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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