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김종서의 냉혹한 보복

세상에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제 살이라도 깎아 먹일 듯 친하게 지내다가도 갑자기 원수로 돌변하고,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이익을 공유하는 벗이 된다. 최근에도 어느 유명 인사가 오랜 친구를 저버리고 궁지로 내몰아 세인을 놀라게 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나 같은 서생은 알 바 아니다. 먼지 덮인 역사책이나 뒤적이면서 사는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옛날이야기나 하나 해보겠다.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종 1년(1453) 5월7일이었다. 정승 황보인과 김종서가 춘추관에서 <세종실록>을 감수했다. 김종서의 눈길이 세종 13년의 한 기사에 멈추었다. 안숭선이 쓴 글이었다. 그 당시에 조선은 명나라에 바칠 송골매 7마리를 포획했다. 세종은 그중 몇 마리를 명나라로 보내야 할지를 신하들에게 물었다.


도승지 안숭선은 전부 보내자고 했다. 그러나 좌승지 김종서는 5마리만 보내고, 2마리는 남겨두어 임금님이 사냥하실 때 쓰자고 했다. 그런데 세종은 매사냥을 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송골매 7마리 모두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정승 김종서는 이 사초를 읽고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안숭선이 나를 싫어해서 이런 말을 꾸민 것이다.’ 김종서는 여러 인사들에게 억울하다는 말을 거듭했고, 드디어 자신에 관한 서술을 삭제했다. 그러고도 불평을 늘어놓았다. ‘안숭선이 살아서도 나를 못살게 하더니 죽어서도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안숭선과 김종서에게는 해묵은 사연이 있었다. 안숭선이 동부승지로 임명되었을 때 김종서는 승정원의 차석인 좌승지였다. 그때 무슨 사정이 있어서 도승지 황보인이 파면되었다. 김종서는 그 자리가 자신의 차지일 줄 믿었다. 그러나 세종은 신참 안숭선을 발탁해 그 자리를 채웠다. 


무슨 연유였을까. 안숭선의 재주가 비상했기 때문이다. 총명한 그는 무슨 일이든 신속 정확히 처리했다. 김종서가 안숭선을 원망하고 시기한 것은 아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상관인 안숭선을 친절하게 대했으나, 속으로는 미워했다. 


정승이 된 김종서는 <세종실록>의 최고위 편수관으로서 안숭선에 관한 기사만 나오면 깎아내리기에 바빴다. 편찬사업에 참여한 성삼문이 조용히 말했다. ‘재상의 도량이 어찌 이렇게 보잘것없는가? 안숭선은 이미 죽어서 한 줌의 흙이 되고 말았는데 아직도 사소한 혐의를 들추며 잊지 못하다니.’


김종서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몇 달 뒤 그는 아랫사람을 불러놓고, 내 마음대로 사초를 고쳤다는 비난을 듣고 싶지 않으니 본래대로 다시 쓰라고 했단다. 그런데 내가 조사해보았더니 원상이 회복된 흔적은 없다.


하필 황보인과 김종서만 그랬을까마는 그들은 실록의 감수책임관으로서 초고를 꼼꼼히 읽고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사를 마음대로 늘리고 줄였단다. 후세에 남은 역사기록은 다 이러할 것이다.


조선 전기에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라는 야사가 있다. 거기에 김종서와 안숭선의 사이가 어떻게 뒤틀렸는지를 알려주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승정원에 갓 부임한 안숭선이 도승지의 자리에 앉더니, ‘내가 이 자리에 앉아야지’라고 말했단다. 그러자 좌승지 김종서의 얼굴빛이 싸늘하게 변했다고 한다.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초임인 안숭선이 다짜고짜 도승지 자리에 앉아서 내 자리라고 만좌중에 공언하는 것이, 선비사회에서 가능한 일일까.


세종 30년(1448) 6월 예문관 대제학 안숭선은 큰 위기에 직면했다. 두어 해 전 그는 병조판서였는데, 그때 이종원을 서생포만호(5품)에 임명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안숭선은 곤욕을 치렀고, 끝내 충청도 진천으로 유배되었다. 얼마 후 귀양에서 풀려나기는 했으나 그는 결국 쓸쓸하게 죽었다.


그가 이종원을 등용한 것은 불법이었을까. <성종실록>은 반론을 실었다. 성종 24년(1493) 윤5월14일, 경연에서 문신 유지가 이런 주장을 폈다. “김종서는 안숭선과 혐의가 깊었습니다. 안숭선이 병조판서 시절 인사를 잘못했대서 멀리 귀양을 갔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김종서가) 중상모략한 탓이라 했습니다.” 앞에 말한 <용재총화>에서도 안숭선의 유배를 김종서 탓으로 돌렸다. 아무래도 알 수 없는 것이 잘난 사람들 사이의 원한이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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