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낙인찍기

2005년 국내 개봉한 알 파치노 주연 영화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의 동명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초반부 한 장면은 너무 인상적이어서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제러미 아이언스 분)는 길거리에서 만난 샤일록(알 파치노 분)을 더러운 오물 취급하면서 침까지 뱉는다. 안토니오가 이런 모멸감을 주는 무례한 행동을 한 이유는 샤일록이 유대인 이자 대부업자였기 때문이다. 유럽 역사에서 유대인이 오랫동안 기독교인들로부터 멸시와 박해를 받아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유대인이 기독교 사회로부터 멸시와 박해를 받았던 주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죄와 성경에서 금지하는 이자를 기독교인들에게 부당하게 갈취한 탐욕의 죄 때문이다. 돈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에게 1파운드의 살을 떼어가겠다는 샤일록의 억지는 이자 대부업자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증오와 박해에 공감하게 만든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16세기 유대 상인 샤일록의 이미지는 당시 유럽 기독교인들의 오해와 편견에서 나온 것이다.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가하면 당시 유대인은 ‘갑’인 기독교인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불쌍한 처지의 ‘을’들이었다. 특히 베네치아는 최초의 유대인 강제 거주구역인 게토가 만들어진 곳이었다. 유대인의 돈이 필요했던 베네치아 정부는 유대인의 베네치아 거주를 허용했지만 언제라도 이들을 다시 추방하곤 했다. 필요해서 불러들였지만 함께 섞여 살고 싶지 않았던 베네치아인들은 1516년 유대인을 공간적으로 격리한다는 법령을 통과시켰다. 이 강제 거주 구역이 게토였다. 유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고 심야 통행을 금지했다. 좁은 공간에 유대인들이 몰려 살아야 했기 때문에 기독교 거주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물의 층수가 높았다.   


사실 이탈리아 상인들이 유대인을 이자 대부업자로 낙인찍고 탄압했던 것은 내 눈의 들보를 못 보는 격이었다. 실제로 서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크게 이자 대부를 했던 사람들은 이탈리아 상인이었다. 13세기 시에나 출신의 본시뇨리(Bonsignori) 가문, 단테의 저주를 받았던 파도바 출신의 스크로베니(Scrovegni) 가문, 14세기 피렌체 출신의 바르디(Bardi)와 페루치(Peruzzi) 가문, 15세기 피렌체의 메디치(Medici) 가문 등 수없이 많은 기독교 이자 대부업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교황의 친구이자 은행가였고, 유럽 왕실의 돈줄이었기에 좀 더 작은 규모의 대부업자였던 유대인이 받았던 멸시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이자 대부로 막대한 부를 챙길 수 있었다.


유대인에 대한 낙인찍기는 무엇보다도 이들이 다른 종교를 믿는 소수자였기 때문이다. 소수자를 혐오하고 낙인찍어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행위는 유대인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인류는 특정 질병에 대해서도 낙인을 찍고 더 나아가서는 그 병에 걸린 사람을 비난하고 경멸해왔다. 현재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는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성 질병이다. 독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바이러스는 동물과 식물의 세포에 침투해 기생 생활을 하면서 숙주를 감염시킨다. 여러 방식으로 퍼지는 바이러스는 감기, 독감,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에이즈 등 다양한 종류의 감염성 질병을 야기한다. 감기 바이러스에 대해선 도덕적 비난을 하지 않지만, 에이즈에 대해서는 음란하다거나 혐오스럽다는 꼬리표를 붙여왔다. 에이즈를 초기에 동성애자 관련 면역 부전증(Gay-Related Immune disorder)으로 불렀고, ‘미개한’ 아프리카 질병으로 낙인찍기도 했다. 


이같이 병을 특정 집단이나 지역과 연결한 낙인찍기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어떤 질병의 명칭에 특정 지역이나 인물을 사용하지 말 것을 권장한다. 이러한 낙인찍기가 병의 예방이나 치료에 도움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이나 사람들을 혐오하고 배제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에서 중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에 대한 비난과 혐오, 더 나아가선 테러를 가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보수신문과 공당의 대표가 이런 낙인찍기식 명칭을 고집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남종국 |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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