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십자군 전쟁

최근 몇 년 동안 타임 슬립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였다. 타임 슬립(Time Slip)은 시간이 미끄러진다는 뜻으로, 과거, 현재, 미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시간 여행을 뜻한다. 타임 슬립을 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겪게 되는 어려움은 상호 소통이다. 이러한 소통의 어려움은 다른 시대에 속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고방식, 행동양식, 가치관 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오래전에 봤던 프랑스 영화 <비지터>(1993년)는 중세 유럽의 기사와 그의 종자가 20세기로 시간여행을 하는 영화다. 영국과의 전쟁에서 프랑스 왕 루이 6세(1108~1137)를 구한 기사 고드프루아는 마녀의 마술로 미래의 장인을 살해하게 된다. 주인공은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는 마법을 활용하다가 잘못되어 미래로 즉 20세기로 타임 슬립하게 되고 웃지 못할 해프닝을 연출한다.

 

주인공의 이름을 고드프루아로 설정한 것이 의도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십자군 시대의 고드프루아(Godefroy de Bouillon, 1060~1100)는 프랑스 출신의 제후로 1차 십자군에 참여해 예루살렘 왕국의 초대 군주가 된 인물이었다. 그는 용맹하고 신심이 깊은 이상적인 십자군 기사의 원형으로 칭송받았다. 그렇지만 현대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12세기 기독교 세계의 십자군과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당시 기독교 십자군들은 이교도인 무슬림들을 죽이는 것이 기독교인의 당연한 의무이고, 더 나아가 이러한 행위가 신이 명하신 성스러운 행동이기에 죄의 사함과 천국행을 보장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십자군 전쟁을 촉발시킨 것은 1095년 프랑스의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행한 종교적 증오로 가득한 전쟁 프로파간다였다. 수도사 로베르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교황은 다음과 같이 십자군 참여를 호소하기 위해 이슬람의 만행을 과장했다.

 

“그들(투르크족)은 하느님의 교회들 중 일부를 파괴했고 일부는 자기들 종교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재단을 더럽히고 모독한다. 기독교도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그 피를 제단에 바르거나 성수반에 붓는다. 그들은 희희낙락하며 기독교도들의 배를 갈라 창자의 끄트머리를 꺼내서 말뚝에 묶는다. 그리고 내장이 쏟아져 나와 쓰러져 죽을 때까지 채찍으로 때려 말뚝 주위를 돌게 한다. 또 말뚝에 묶어놓고 화살을 쏘기도 한다. 목을 잡아 뺀 다음 단칼에 목을 칠 수 있는지 시험해보기도 한다. 한편 경악을 금치 못할, 여자들을 겁탈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교황의 얘기가 사실인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설교사들도 예수의 수난이나 십자가에 못 박힌 성화를 들고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성전에 동참하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그 성화엔 터번을 두른 이슬람교도들이 로마인을 대신해 그리스도를 박해한 자들로 그려졌다. 교황과 설교사들에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교회의 십자군 호소에 이끌려 십자군 원정에 동참한 사람들은 이 전쟁이 신이 명한 성스러운 전쟁이라 믿었다. 십자군에 대항해 싸운 이슬람 사람들 또한 신은 위대하다며 십자군에 맞섰다. 최종적으로 1291년 이슬람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서 십자군 국가를 모두 몰아냈다. 당시 한 이슬람 역사가는 이 성공을 축하하며 신을 찬양했다. 양쪽 모두 신의 뜻이고 신을 찬양한다고 외쳤는데 신은 과연 누구의 편을 들어야 했을까? 참고로 이슬람의 경전 <쿠란>엔 ‘우리가 믿는 신과 유대교인 여러분이 믿는 신과 기독교 여러분의 신은 유일신 창조주이라’라는 문구가 나온다.

 

십자군이 유럽에 가져온 것은 살구밖에 없었다고 평하는 프랑스 역사가 자크 르 고프의 지적은 십자군이 불필요한 전쟁이었음을 시사한다. 십자군 전쟁뿐만 아니라 신과 종교라는 명목하에 치러진 모든 전쟁은 타 종교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불관용의 전쟁이며, 성전이 아니라 학살일 뿐이다.

 

현재도 중세 유럽에서 타임 슬립한 십자군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처럼 말이다.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 전국 방방곡곡에서 믿음의 용사들, 예속된 군대들이 모였으니 성령으로 붙들어 주시옵소서!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이슬람으로 더럽힐 수 없사오니 우리 민족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옵소서!”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역사와 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시대 성교육  (0) 2020.07.16
홍콩보안법과 세조구제  (0) 2020.07.09
우리에게 “남조선”은 무엇입니까  (0) 2020.06.25
명복은 빌지 않습니다  (0) 2020.06.18
국가의 일  (0) 2020.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