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용과 거부

한때 세계사 교과서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켰다는, 관행적으로 사용한 표현이 있었다. 구체적 내용이나 맥락에 대한 보충설명이 없다면 이 문장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신앙은 기독교를, 이성은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학문을 상징한다. 조금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중세 기독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학문을 신앙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천년 넘게 배제했다. 그러다 12~13세기 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배우자는 욕구가 다시 일어났다. 13세기 후반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도 신의 오묘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서 기독교 신앙과 고대 그리스 철학의 이성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학문의 수용에 아무런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 <장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의 수용이 교회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던 역사를 흥미로운 스토리로 재구성했다. 14세기 초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이 소설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으려 하는 젊은 수도사들과 이를 막기 위해 책에 독을 바른 나이 든 수도사 호르헤가 등장한다. 호르헤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교육적 가치가 있고 선을 지향한다고 말한 “웃음”이 인간을 타락시키고, 웃음을 알게 되면 신을 경배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그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도 중세 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의 부활을 막으려 했다.

 

1270년 파리 주교 에티엔 탕피에(Etienne Tempier)는 ‘급진주의적’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들의 13가지 명제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금지했고, 1277년에는 이 금지 목록을 219개로 확대했다. 그중 “세계는 영원하다” “영혼은 육신이 죽은 후까지 생존하지 못한다” “자연의 과정들은 규칙적이고 불변이다”라는 명제는 신의 창조행위와 영혼 불멸을 부정하고, 기적을 배제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교리에 치명적인 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1277년의 금지령은 약 50년간 지속되다가, 1325년 파리 주교가 아퀴나스의 가르침을 언급했다고 내린 파문을 무효화하고, “이후로 우리는 이 항목들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대신 그것들을 자유로운 학문적 논의에 맡긴다”고 선언함으로써 폐지되었다. 

 

12~13세기 서유럽에서 배우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은 이슬람 세계로부터 수입된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대 그리스 철학을 배제했던 중세 유럽 기독교 세계와는 달리 이슬람 세계는 적극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지적 유산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아바스 왕조는 수도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이라는 도서관 겸 학술기관을 세우고 우수한 학자들을 초빙해 그리스어로 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번역하도록 후원했다. 8세기 중반부터 10세기 말까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등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대표하는 철학자, 지리학자, 점성학자, 수학자들의 저작 대다수가 아랍어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번역 덕분에 아바스 왕조는 이슬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창조했다.

 

이같이 중세 이슬람 세계가 한층 발전시킨 고대 그리스 철학과 학문의 유산이 12세기 유럽 기독교 세계로 역수입된 것이다. 아랍어 탐구 붐이 일어났고, 아랍어로 번역된 고대 저술들이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아랍어와 아랍어로 된 책을 배우고자 하는 욕구만큼 이를 막으려는 저항도 강력했다. 강한 저항과 반대가 있었지만 12세기 이후 기독교 세계는 이슬람 등 외부 세계로부터 많은 것을 수용하여 발전시켰고 이러한 바탕 위에 근대 세계를 만들어 갔다. 반면 이슬람 세계는 그리스의 고대 지식을 적극 수용하고 발전시켰던 아바스 왕조 시절과는 달리 15~16세기에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혹 중세 말 지식 수용에서의 이러한 태도 변화가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근대화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수용되거나 거부되었던 역사는 종교, 이데올로기, 인종과 민족, 국가라는 장벽을 세우고 사상과 학문의 흐름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들려준다.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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