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여적]간송미술관의 보물 경매

간송미술관이 경매로 내놓은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 연합뉴스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스물네 살 되던 1929년 미곡상을 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4만마지기(수확량 2만석)의 논을 상속받는다. 쌀 2만석은 요즘 시세로 450억원, 수십채의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거금이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간송의 꿈은 변호사가 되어 일제강점기의 우리 동포를 돕는 것이었다. 그러나 졸지에 대부호의 상속자가 되면서 ‘문화재 지킴이’로 진로를 바꾼다. 그가 문화보국(文化保國)에 뜻을 세운 데에는 서예가 위창 오세창의 영향이 컸다(이충렬, <간송 전형필>). 


간송의 문화재 수집은 일제 문화침탈이 극에 달한 1930~1940년대에 집중되었다. 간송은 1935년 일본인 골동상에게 기와집 20채 값을 치르고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구입했다. 신윤복의 풍속화첩 ‘혜원전신첩’을 사들이는 데는 그 두 배의 값을 치렀다. 1937년에는 영국인 수집가 존 개스비에게 고려청자 20여점을 일괄 구입하면서 논 1만마지기를 처분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사들인 일화는 감동적이다. 그는 경북 안동에 훈민정음이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고 몇 년을 수소문한 끝에 호가의 10배를 지불하고 단숨에 구입했다. 간송이 지켜낸 서화, 서적, 고려청자, 불상 등 우리 문화재는 수천점에 달한다. 이 가운데 국보와 보물이 44점이나 들어 있다. 간송은 한갓 골동품 수집가가 아니었다. 진정한 ‘문화 패트런(patron·보호자)’이었다. 그는 사립 미술관 ‘보화각’(간송미술관 전신)을 세워 후진 양성과 미술사 연구를 후원했다. 간송을 빼놓고는 한국미술사를 말할 수 없다.


간송미술관 소장품 2점이 경매 시장에 나왔다는 소식이다. 오는 27일 경매에 부쳐지는 문화재는 금동여래입상(보물 284호)과 금동보살입상(보물 285호). 간송이 1941년 도쿄에서 구입한 통일신라 불상들이다. 간송미술관 문화재가 경매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미술관은 재정난으로 경매를 결정했다고 하는데, 100년 가까이 한자리를 지켜온 간송 소장품이 팔린다는 소식은 안타깝다. 간송의 소장품은 사유 재산이지만, 모두의 문화재이다. 간송미술관의 재정난을 타개하면서 소장품의 공공성을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문화재청 등 관련 기관·단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조운찬 논설위원 sido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