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여적]강산무진도 vs 촉잔도권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이 공개한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 김홍도와 나란히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떨쳤던 이인문이 그린 총 길이 8.5mdp 달하는 두루마리 형태의 산수화다. 왼쪽은 실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과 쌍벽을 이루던 심사정이 그린 8m 길이의 ‘촉잔도권’이다. / 김창길 기자

2009년 10월 초 국립중앙박물관은 13년 만에 일본에서 건너온 ‘몽유도원도’를 보려는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2005년 용산중앙박물관 개관전에서는 8년 만에 공개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두 작품이 주목을 받은 것은 두루마리 대작으로 실물 공개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몽유도원도는 길이가 11m, 세한도는 15m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감상을 적은 발문(跋文)을 포함한 것으로 순수한 그림의 크기는 몽유도원도가 38.7×106.5㎝, 세한도는 23.3×69.2㎝에 불과하다.

 

조선 회화의 진정한 대작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856×44.1㎝)와 심사정의 ‘촉잔도권’(818×85㎝)이다. 불화를 제외한다면 역대 회화 가운데 이들을 능가할 대작은 없다. 두 작품은 조선 후기 산수화의 대표작이다. 그렇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촉잔도권’(보물 1986호)은 2018년, ‘강산무진도’(보물 2029호)는 지난해에야 국가지정 문화재에 올랐다.

 

‘촉잔도권’은 중국 중원에서 촉 땅(쓰촨)으로 갈 때 넘는 험준한 산길을 담은 두루마리 그림이다. ‘촉잔도’는 이백의 한시 ‘촉도난(蜀道難)’의 배경이기도 하다. 남종화풍의 대가였던 현재 심사정은 겸재 정선 등과 함께 ‘삼재(三齋)’로 불렸지만, 오늘날에는 실경산수의 대가 정선만큼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이인문은 단원 김홍도와 동갑내기이다. 산수·인물·풍속화에 두루 능했다. 그의 대표작 ‘강산무진도’는 기이하고 험난한 강과 산을 그린 산수화이면서 그림으로 문명화된 이상사회를 꿈꾸었던 ‘조선의 신풍속화’이다. 그러나 그 역시 김홍도의 빛에 가려졌다.

 

강산무진도와 촉잔도권이 21일 개막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신국보보물전’에 나란히 출품됐다. 국보·보물 200점이 모인 전시이지만, 박물관 측은 특별하게 두 그림을 한 공간에 펼쳤다. 유례가 없는 일이다. 정선과 김홍도에 가려진 심사정과 이인문을 회화사에 복권시키는 한편 코로나19에 움츠러든 시민들을 예술로 각성시키는 전시다. 작가 김훈은 이인문의 그림에서 소설 ‘강산무진’을 착안했다. 이인문의 한 세대 뒤인 추사 김정희는 힘찬 서체로 ‘계산무진(谿山無盡)’을 썼다. 다함이 없는 강산처럼 건강한 일상도 계속되어야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