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여적]사라지는 ‘이육사 순국지’

중국에서 여행작가로 활동 중인 윤태옥씨가 지난 10일 베이징의 ‘이육사 순국지’ 철거 소식을 알려왔다. 윤씨는 페이스북에서 “육사 순국지 그 건물 남쪽과 동쪽의 평방이 철거되고 있다”면서 “순국지인 2층 벽돌 건물은 2차 철거한다고 현지 주민이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그가 보내온 사진은 철거가 임박했음을 보여준다. 건물 주변은 폐자재로 어수선하다. 벽에는 ‘안전제일 예방위주’ 등 철거를 알리는 중국어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베이징시 둥청구 둥창후퉁 28호. 지난해 10월 경향신문 열하일기 답사팀과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이육사 시인이 순국한 옛 일본영사관 감옥 건물은 퇴락했지만 원형이 보존돼 있었다. 당시 답사팀은 건물 마당에서 시 ‘광야’를 암송하며 사적지가 보존되길 기원했다(경향신문 2018년 10월30일자 ‘여적’). 그러나 한국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에 이육사 순국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지난 3월 각 가구에 알린 주거정비계획 통지서에는 ‘4월10일 이후에 전면 철거를 실시한다’고 나와 있다.


이육사는 항일운동 중인 1943년 말 서울에서 체포됐다. 곧바로 베이징으로 압송된 그는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고문에 시달리다 이듬해 1월 숨졌다. 순국지가 확인된 것은 근 70년이 흐른 뒤였다. 2012년 독립기념관은 이육사의 사망기록을 근거로 둥창후퉁의 옛 건물이 육사가 숨진 감옥이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후속조치는 없었다. 한때 학계 일각에서 이곳을 베이징의 한국독립기념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정부 어느 부처도 관심이 없었다. 중국 내 임시정부 청사 보존·복원에 쏟은 노력을 조금이라도 이곳에 기울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순국지 철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이육사 순국지 보존책을 마련해 달라’는 글이 올랐다. 그러나 보존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건물터에 ‘육사 순국지’ 표지석을 세울 수는 없을까.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15일 “베이징 일대 독립운동 사적지 조사가 이번주 목요일부터 예정되어 있다”며 “순국지 관련 건물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만시지탄이다. 게다가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아닌가.


<조운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