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역사와 현실]교황이 고려왕에게 편지를 보냈을까

 

1333년 교황 요하네스 22세가 고려의 왕에게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2016년 9월 무렵이었다. 한 인터넷 기사에 따르면 교황이 고려의 충숙왕에게 서신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 편지가 사실이면 우리 역사에 굉장히 중요한 발견일 것이라는 전문가의 인터뷰도 함께 실려 있었다. 이후 이 이야기를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 <직지 코드>(2017)와 김진명의 소설 <직지: 아모레 마네트>(2019)까지 나왔다. 이 이야기는 한국 사람의 자긍심과 애국심을 드높일 수 있는 소재임이 분명하다. 14세기 초반에 이미 교황이 고려왕에게 편지를 보낼 정도로 고려의 명성이 유럽에까지 알려져 있었다고 자랑하고, 유럽과 한반도의 교류사를 250년 이상 앞당겨 서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지의 수신인을 고려왕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Rex Corum(렉스 코룸)’이라는 두 단어다. 라틴어로 렉스는 왕을 뜻하고, 코룸은 왕이 다스리는 왕국의 명칭을 나타내는 소유격 형용사이다. 코룸이라는 단어가 고려를 뜻하는 코레아(Corea)와 발음이 유사해서 렉스 코룸은 고려의 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라틴어의 격 변화를 정확히 지켰다면 Rex Corum이 아니라 Rex Coreae(고려의 왕)나 Rex Coreanorum(고려인들의 왕)이라고 써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해 3년간의 자료조사와 연구를 통해 알아낸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교황 요하네스 22세가 ‘렉스 코룸’에게 서신을 보내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초대 북경 대주교였던 몬테코르비노가 사망한 후 후임 대주교를 당시 원 제국의 수도였던 대도(현재의 북경)로 파견하기 위함이었다. 교황은 후임 대주교 니콜라스에게 세 명의 몽골 군주들에게 전달할 친서를 맡겼다. 대 칸, 킵차크의 칸 그리고 코룸의 왕이 바로 그들이었다. 코룸의 왕은 타르타르, 즉 몽골인들의 왕이고, 이름은 소코 데 키기스타였다. 교황은 그에게 왕국에 있는 기존의 기독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독교 신자들에게도 계속해서 호의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사절단은 킵차크 칸 국을 경유해 차가타이 칸 국의 수도 알마릭까지 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최종 목적지인 북경에 도달하는 데는 실패했다. 신임 대주교 일행이 북경에 도착하지 못하자 1336년 대 칸 토곤 테무르는 아비뇽 교황청에 사절단을 보냈고, 몽골 사절단을 접견한 교황 베네딕투스 12세는 1338년 새로운 북경 대주교를 임명해 파견했다. 교황은 북경으로 가는 길에 통과하게 될 킵차크 칸 국과 차가타이 칸 국의 칸들에게 전달할 친서를 작성해서 사절단에 맡겼다. 1333년 친서를 보내게 된 배경과 친서의 핵심 내용 그리고 1333년 사절단의 실패와 1338년 2차 사절단의 파견 등을 근거로 판단하면 ‘의문의 왕’이 다스리는 왕국은 사신들의 최종 목적지인 대도로 가는 도중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렉스 코룸을 고려의 왕으로 볼 수 없는 또 다른 근거는 당시 유럽 사람들이 고려를 코레아가 아니라 카울리(또는 카울레)로 불렀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코레아라는 명칭은 16세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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