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사람들

1815년, 조선 선비 윤기는 경기 양근의 산골짜기로 이사했다.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이 야기한 세계적 대기근이 조선을 덮친 해였다. 모든 물건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곡식은 물론 소금, 땔감, 옷감, 심지어 짚신조차도 구할 수 없었다. 서울 시장까지 가 보았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땔나무 한 짐이 무려 300~400전으로 폭등했다. 평상시 쌀 한 가마 값이다. 간신히 구한 소금은 메밀과 보릿가루를 섞은 가짜였다.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살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윤기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물건이 부족한가? 누군가 대답했다. “그야 죽은 사람이 많아서 그렇지. 농부도 죽고 나무꾼도 죽고 소금 굽는 염부도 죽었으니까.” 하지만 윤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기근과 역병이 심하다지만 죽은 사람은 열에 한둘도 못 된다. 나머지는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생산자가 줄어들어 물건이 부족하다니 말이 되는가.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이 기근을 틈타 물건을 사재기해서 그렇다.” 하지만 이 말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두 가지 품목도 아니고 그 많은 물건을 모조리 사재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만약 사재기가 원인이라면 소수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생산과 유통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전부 물건을 내놓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모두가 위기를 한몫 잡을 기회로 삼은 결과, 시장은 제 기능을 상실했다. “이미 물건이 귀해졌지만 더 귀해지기를 바라고, 이미 물가가 올랐지만 더 오르기를 기다린다.”(<무명자집> 중 ‘협리한화’) 기근과 역병을 피해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생필품 부족으로 죽어가도 그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기근과 역병보다 무서운 것이 인간의 탐욕이다.


해방 전후 구술자료를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방 직전까지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그런데 해방 직후 갑자기 시장에 물건이 쏟아졌다. 이 물건들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일제가 수탈한 물건이었을까? 아니다. 전쟁이 끝나 더 이상 물건값이 오르기를 기대할 수 없자 그동안 너도나도 쟁여놓은 물건들이 풀린 것이었다. 해방을 경험한 노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다. 국가적 위기도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일 뿐이다.


‘위기를 기회로.’ 자기 계발과 기업 경영의 철칙이다. 이 말은 내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해 발전의 기회로 삼으라는 뜻이지, 남이 위기에 빠진 틈을 이용해 제 잇속을 채우라는 뜻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위기가 심해질수록 탐욕은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에서 새삼 확인하는 사실이다.


전 국민의 필수품이 돼버린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하루 생산량이 1000만장을 넘는다고 하니 정상적으로 유통된다면 부족할 리 없어 보이는데, 품귀 현상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수요 폭증 탓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유통이다. 지금도 어딘가의 창고에는 마스크 상자가 가득 쌓여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사람은 유통업자만이 아니다. 특정 종파가 지역사회 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되자 다른 종파들은 이단 박멸의 기회라도 얻은 양 비난을 퍼붓고 있다. 방역에 비협조적인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원래 교회 같은 다중이용시설은 감염에 취약한 법, 교회에서 감염이 되었다면 다른 교회들도 조심할 일이다. 지금은 이단 박멸의 기회가 아니라 교회의, 아니 종교 전체의 위기다. 이 와중에 굳이 대규모 집회를 계속하겠다는 보수단체 역시 지금의 위기를 존재 과시의 기회로 삼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집회 참가자의 상당수가 감염에 취약한 노인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이 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역풍을 우려한 탓인지 아직까지 정쟁은 자제하고 있지만 잠복기일 뿐이다. 국가적 위기마저 정쟁에 이용하는 고질병이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 이처럼 다시 오기 어려운 절호의 기회를 그냥 놓칠 사람들이 아니다. 특정 지역에 확진자가 몰리자 일각에서는 지역감정을 자극하려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모든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때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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