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잠자리까지 통제한 중세 교회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는 남녀 간 사랑이 아무런 도덕적 윤리적 법적 제약을 받지 않는다. 같은 사람과 오래 사귀거나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행위는 오히려 이상한 행동으로 취급받는다. 매일 새로운 상대와 만나고 관계를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례인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너무 파격적이어서 아직은 우리 사회가 수용하기 어려워 보인다. 멋진 신세계에서의 성은 역사 속에서 성을 오랫동안 억압해온 것을 뒤집어보기 위한 과감한 상상일 것이다.

 

유럽 역사에서 특히 성에 대해 억압적인 자세를 취했던 시대는 중세였다. 중세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음욕은 구원 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7죄 중 하나였고, 성욕은 자연스러운 생리적 욕구가 아니라 철저하게 단죄해야 할 육체적 죄악이었다. 중세 교회가 성에 대해 억압적인 태도를 고수한 핵심적인 이유는 섹스가 원죄의 결과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기독교 초기 교부들은 이러한 개념을 체계화시켰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성행위를 통해 원죄가 전달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성행위는 부끄러운 행위로 간주되어 즐거워해서는 안 되며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슬프게 해야 했다.

 

중세 의학 또한 성행위가 건강에 해롭다는 해석을 내놓으면서 성 억압에 동참했다. 이런 상황에서 11~13세기 성교가 건강 유지에 좋다고 이야기하는 이슬람 의학서가 라틴어로 번역돼 기독교 사회에 소개되면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성교가 건강 유지에 좋다는 이슬람의 의학 해석이 기독교 사회의 성 윤리와 인식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작가 초서는 이 의학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11세기 말의 콘스탄티누스 아프리카누스를 저주받을 수도승 놈이라고 비난했다.

 

중세 교회가 성을 강력하게 통제하려 했던 사실은 성직자들이 일반 신도들의 일상생활과 도덕 문제를 계도하는 데 활용했던 <고해 신부 대전>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항목이 바로 성문제였고, 그만큼 고해신부는 이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했다. 당연히 잠자리도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통제의 대상이었다. 교회는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날과 방식까지 규제했다. 축일과 금식일, 일요일, 월경과 임신 기간, 수유 기간, 출산 후 40일 등의 기간에는 성행위가 금지되었다. 7세기 축제일이 273일 정도였던 것을 고려하면 중세 부부에게 허용된 평균 성교 횟수는 일주일에 한 번꼴도 되지 않았다. 시간뿐만 아니라 체위 또한 규제의 대상이었는데 오늘날 선교사 체위라고 부르는 형식만 허용했다. 물론 성행위는 합법적인 부부간의 관계만 허용되었고, 그 경우에도 쾌락이 아닌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것만 가능했다. 중세 후반 이탈리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시에나 출신의 설교사 베르나르디노는 “부부가 함께 절정에 도달하고서도 아이를 갖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여러분들은 바로 그때마다 죽을죄를 짓는 것입니다”라고 설파했다.

 

현대 사회에서 성에 대한 인식은 중세 사회와 비교하면 크게 변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중세 유럽적 관점과 시각에서 성을 규제하고 억압하는 시도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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