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퇴계의 편지 “아내를 공경하라”

코로나19가 세계 각국에 유행하자 뜻밖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한편에서는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가정폭력과 이혼율도 급증한다며 걱정이 많단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비좁은 공간에서 성인 남녀가 평화롭게 사는 일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유교가 지배한 옛날에는 부부관계가 어떠했을까. 그때는 가부장 사회라서 여성은 고통을 감수해야 했을지 몰라도 남성은 편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기가 쉽다. 정말 그랬을지 모르겠다.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퇴계선생연보’에 따르면, 그는 21살 때 허씨 부인과 결혼했다. 두 해 만에 큰아들 준이 태어났고, 다시 4년이 지나 둘째 아들 채를 얻었다. 그런데 산후병이 있었던지 부인이 세상을 떠나 이황은 27세에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이황은 봉사 권질의 딸과 재혼했다. 그런데 권씨 부인과의 부부관계는 순탄치 못했다. 둘 사이엔 자녀도 없었다. 훗날 이황은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어려움을 솔직히 고백했다.


“나는 두 번 결혼했으나 늘 불행했습니다. 그래도 아내를 탓하는 야박한 마음만은 갖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그렇게 지낸 세월이 수십년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롭고 심란해, 참지 못할 지경이 된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대륜(大倫)을 가볍게 여겨(즉 아내를 버려), 홀로 계신 어머님께 근심을 끼칠 수야 있었겠습니까.”(<퇴계선생문집>, 제37권) 


자신의 불행했던 결혼생활 때문에, 이황은 조화로운 부부생활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명종 15년(1560) 그의 나이는 이미 예순이었는데, 갓 결혼한 손자 이안도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부부는 도덕의 시작이고 만복의 근원이다. 아무리 친하고 가깝더라도 부부는 서로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언행을 삼가야 한다.” 손자 부부의 행복을 기원하며 이황이 준 경고와 부탁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서로 예의를 지키며 공경하라. 이런 법을 잊었기 때문에 부부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부부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자세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양편 모두가 정성스럽게 서로 섬기고 공경해야 한다.”(<퇴계선생문집>, 제40권) 이것이 대학자 이황의 가르침이었다.


나도 여러 문헌에서 직접 확인한 사실인데, 16세기 조선에서는 파탄에 이른 부부가 흔했다. 학식과 덕망이 제일 높았던 이황조차도 행복한 부부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의 제자 중에도 부부 갈등으로 애를 먹다가 스승에게 조언을 구하는 이가 없지 않았다. 그런 고민이 담긴 편지를 받으면, 이황은 장문의 답장을 써 제자를 토닥였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결혼 파탄의 책임을 주로 가장인 남성에게서 찾았다는 점이다. 남성이 스스로 반성하고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며, 이황은 제자에게 부부의 도리를 다하라고 채근했다.


이황은 16세기 조선에서 여성의 처지가 매우 열악하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그의 설명은 대강 이러했다. “옛날엔 이혼한 여성도 다시 시집갈 수 있었다. 그때라면 아내를 친정으로 되돌려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여성은 오직 한 남편과 살아야 한다는 관념이 보편적이므로, 설사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남성은 아내를 원수처럼 대하면 안 된다.”


어느 제자에게 보낸 답장에서 이황은, 더욱 깊이 생각해 자신의 잘못을 깨치고 스스로 태도를 바꾸라고 했다. 심지어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부부 문제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찌 학문에 종사한다고 하겠으며, 도덕을 실천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lt;퇴계선생문집&gt;, 제37권) 선비라면 끝끝내 아내를 존중하라는 주문이었다. 이마저도 가부장적인 관점이라고 비판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황은 16세기의 인물이었다. 어느 시대든 한계는 있기 마련 아닌가. 세월이 한참 흐르고 보면 지금 우리가 참신하게 여기는 것들도 대개는 빛을 잃는다.


부부는 언제나 서로 존중하고 공경해야 한다. 이황이 몸소 실천하기도 한 그 가르침이 예스럽기만 한가. 오늘 아침 내게는 아주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말씀이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chonmyongd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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