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짝퉁설’에 박탈당한 국보의 지위

경기 양평 용문산 상원사 앞마당에 고색창연한 동종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겨우 비를 피할 수 있는 보호각만 있을 뿐 보호틀도 없는 그런 종이다. 이름하여 양평 용문산 상원사 종(사진)이다. 유명한 강원 평창 오대산 상원사 종(국보 제36호)과는 다른 ‘동명이종’이다. 그러나 이 양평 상원사 종도 한때는 ‘신라와 중국의 양식을 절충한 진귀한 종’이라는 찬사와 함께 일제강점기인 1939년 보물로 지정된 바 있다. 해방 이후 국보(제367호) 대접까지 받았다. 그러나 1962년 문화재 재지정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당시 황수영 문화재위원(동국대 교수)이 ‘짝퉁설’을 제기한 것이다. “1907~1908년 상원사에 있던 종을 800원을 주고 사들여 서울 남산 밑에 조성한 일본 사찰(동본원사)로 옮기면서 진짜는 일본으로 빼돌리고, 가짜를 황급히 만들어 절(동본원사)에 내걸었다”는 주장이었다.

 

 

1907~1908년 사이 상원사에 종을 운반했던 마을주민 3명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이들이 ‘상원사 종을 옮긴 몇 년 후 서울에 가서 동본원사에 걸린 종을 보았는데 진짜가 아니었다’고 증언했다”는 것이다. 황 위원은 또 상원사 종이 통일신라시대 종의 특성인 단룡뉴가 아닌 쌍룡뉴이고, 용통(소리관)도 갖추지 않았다는 것을 가짜의 이유로 들었다. 결국 이 종은 국보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이후 일본 짝퉁이 아니라 오히려 7세기 중후엽에 제작된 가장 오래된 종이라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짝퉁설’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12년에는 한국과학기술원(KIST) 도정만 박사팀이 상원사 종의 ‘납과 주석’ 농도를 분석해보니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란 결과를 얻어냈다. 상원사 종의 납(2.81%)·주석(13.8%) 농도가 신라시대 종의 기준치(납 3% 이하, 주석 10~15%) 안에 들었다. 그럼에도 ‘국보 회복’ 논의는 지금껏 감감무소식이다.

 

곱씹어보면 이상한 점이 많다. 왜 일본의 동본원사는 800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합법적으로’ 사들인 진짜 종을 빼돌리고 굳이 가짜 종을 제작해서 걸어두었을까. 돌이켜보면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해간 일본인들이지만 모조품을 만들어놓고 진짜를 빼돌린 적은 단 한차례도 없다.

 

진짜가 가짜 판정을 받고, 그것도 가장 치욕적인 일본 짝퉁이라는 낙인 끝에 문화유산의 자격을 상실했다면 어찌되는 것인가. 인간의 잘못으로 1300~1400년 된 문화재가 고철덩어리가 된다면 이것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이기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