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공부와 질문

우리나라처럼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개인적으로 꽤 여러 해 전 한 미국인과 한국 중·고등학생들 일상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말을 듣던 그분 말이 압권이었다. 그분은 단박에 한국 학생들은 공부를 한다기보다 학대(abuse)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세계적으로 대단히 우수하다는 국제기관의 발표가 신뢰할 수 없는 정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끔씩 찜찜할 때가 있다. 몇 년 전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서 기자회견을 하다가 벌어진 일도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그는 기자회견을 하다가 한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한국 기자에게 질문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한국 기자들 중 아무도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회견장에 있던 중국 기자가 질문을 했다. 이런 사례가 매우 예외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학에서도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는 학생은 드물다.

 

한국 학생들이 질문을 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남들 앞에서 틀린 답을 말하게 될까 해서 그럴 수 있다. 자신이 덜 똑똑한 사람임을 자발적으로 남들에게 보일 필요는 없으리라. 하지만 강의 중 질문은 답보다는 생각을 묻기 위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관성에 따라 정답을 맞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암묵적으로 모든 문제마다 유일한 정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대개는 합리적인 의견들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질문을 안 하는 데는 이보다 더 깊은 이유가 있을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학생들은 공부하는 내용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의 목표는 시험을 잘 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 그래서 사회적 평판이 더 높은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일 뿐 공부 내용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때문에 공부는 곧 시험공부일 뿐이다. 이렇게 되면 공부는 지겹고 괴로운 노동에 불과하다.

 

한국은 시험에 대한 유구한 전통을 가졌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한국은 전근대시대에 시험으로 지배층을 선발했던 단 두 나라 중 하나이다. 중국에서 과거제도가 들어온 이래 1000년에 가까운 과거제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한국이다. 과거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다. 하지만 정말 폐지된 것일까? 오히려 더 확대된 듯하다. 조선시대 과거는 양반들만 고생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전 국민이 시험에 시달린다.

 

조선이 시험공부의 전통만 가진 것은 아니다. 공부 내용 그 자체를 귀히 여기는 전통도 있었다. 한 예가 1559년부터 1566년까지 7년간 기대승과 이황 사이에 있었던 논쟁이다. 당시 전라도 광주에 살던 32살의 기대승은 멀리 경상도 안동에 살던 이황에게 한 장의 편지를 보냈다. 학술적 질문을 담은 정중하고 조심스러운 편지였다. 당시 이황은 58살이었다. 고위 관직에서 은퇴하고 나라 안에서 가장 존경받던 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기대승은 아직 문과에 합격하기 전이었다. 기대승의 편지로 시작된 논쟁은 오늘날 ‘사단칠정논쟁’으로 알려진 조선시대 대표적인 학술논쟁이다.

 

사단칠정논쟁은 성리학 이론에 관한 것이지만 단순히 학문적이기만 한 논쟁은 아니다. 이어지는 질문과 답변이 7년간이나 계속된 이유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당대 일급 학자들이 두 사람의 논쟁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논쟁은 나중에 이이와 성혼의 또 다른 논쟁으로 이어졌다. 모두가 논쟁 내용이 그들이 살았던 시대 상황과 깊이 관련되었기에 벌어진 일이다.

 

따지고 보면 학문적이기만 한 학문은 별로 없다. 기대승이 이황에게 계속해서 질문했던 것은 그 질문이 자신이 살아갈 현실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실 자체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기대승과 이황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았다. 기대승은 날카롭고 공세적이었고, 이황은 부드럽고 방어적이었다. 긴 논쟁 끝에 이황은 결국 자신의 성리학설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은연중 기대승이 자신의 수제자임을 몇 차례 인정했다.

 

오늘날 세계는 인재전쟁 중이다. 미국이 이 전쟁에서 현재까지 가장 앞서 있는 듯 보인다. 미국은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부진하지만 여전히 국가적으로 높은 생산성을 지녔다. 인재들이 만들어내는 다른 영역에서의 생산성 때문이다.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가장 반발하는 것이 실리콘밸리 첨단기업들이다. 심지어 그들은 필요한 인재를 얻기 위해 그 인재가 일하는 기업을 통째로 사들이기도 한다. 이쯤 되면 천리마를 구하기 위해서 죽은 천리마 뼈를 거금에 샀다는 옛이야기가 무색하다.

 

말만 같을 뿐 오늘날의 공부와 옛날 조선시대의 공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공부로 얻고자 하는 인재의 능력도 서로 다르다. 어떤 능력이 더 우월한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때와 지금은 시대와 삶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것도 있다. 공부 내용이 개인적 삶의 문제 및 당대의 시대적 과제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공부에 질문이 없을 수 없다. 결코 시험용 공부가 진짜 인재를 만들 수는 없다. 공부는 마음을 담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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