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기고]‘앙부일구’를 제대로 복원하자

오목해시계라고 하는 앙부일구는 세종시대 최고의 과학 기구이다. 당대 최고의 과학 기술과 세종의 민본주의 정치 이념이 반영된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앙부일구가 복원되어 있거나 복제되어 있다.

그런데 종묘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세종 당대의 앙부일구가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이를 바로잡으려고 10년 이상을 애써 왔지만 아직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 세종의 그런 위대한 업적을 이어받기는커녕 일부에서는 깔보고 훼손하기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앞, 그 지하의 세종 이야기 전시관, 여의도 세종대왕 동상 앞, 경기 여주 영릉 등 곳곳에 앙부일구가 복원되어 있는데 이 모두가 세종시대의 민본주의 과학 발명품이 아닌 엉터리 복원품이다.

세종은 다목적용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1434년 설치하면서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시각 표시를 12간지의 ‘동물신’ 그림으로 나타냈다. 이때는 한글 창제 훨씬 전이었으므로 한자로 시각 표시를 했다면 한자 모르는 백성들한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1m도 안되는 2단 계단 위에 설치해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이 받침돌은 서울 탑골공원 외진 곳에 방치되어 있다.

이때는 시각 표시를 두 시간 단위로 쪼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열두 띠로 나타냈으므로 해시계인 앙부일구는 오전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는 토끼 그림, 그 다음은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순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복원품들은 동물신 그림 대신에 한자 전문가도 알기 힘든 초서체 한자로 만들어 수많은 관광객과 후손들을 우롱하고 있다.

강원 양구군 중앙로 ‘아름답고 걷고 싶은 거리’에 설치된 해시계 (출처 : 경향DB)


15세기에 시간을 정확히 측정해 백성들에게 그 시간을 알게 하는 것은 임금의 고유 권한이었다. 그런데 세종은 그 시간을 백성 스스로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앙부일구야말로 백성 중심의 과학을 실현한 세종시대 최고의 발명품인 셈이다.

이제 받침돌과 앙부일구를 제대로 복원해 누구에게나 평등한 실용과학을 실현하려 했던 세종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김슬옹 | 세종대왕나신곳성역화국민위원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