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에 삼형제가 살았다. 어느 날 분가하기로 결정하고 마당의 나무도 나누기로 했다. 하지만 땅을 파기도 전에 시들어버렸다. “원래 한 그루였던 게 나누려고 하자 죽는구나. 인간이라는 우리가 이 나무보다 못하구나.” 크게 깨달은 삼형제는 계획을 접었다. 그러자 나무도 다시 싱싱하게 활기를 되찾아 잎이 무성해졌다고 한다. 이런 전설을 간직한 까닭에 형제간의 우애와 가정 화목을 상징하는 나무로 마을에 많이 심었다. 인왕산 둘레길에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 나무는 봄에 진한 자주색의 꽃을 가지에 다닥다닥 밀집해서 피운다. 가을이면 열매가 꼬투리로 달리는데 그 안에 씨앗이 피붙이들처럼 오종종하게 들어 있다. 박태기나무이다.
10월 중순. 신문은 금강산에서 벌어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뉴스를 전한다. 설움과 기쁨이 뒤엉킨 상봉장 모습의 사진. 기사를 읽자니 아주 애틋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전쟁이 갈라놓은 생이별 40년. 신혼 초에 남북으로 헤어져 회갑을 넘긴 초로의 부부가 17일 밤 8시50분 도쿄 팔레스호텔에서 재회했다. 평양의 손영종씨(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실장)와 김선순씨(부산시 동래구 칠산동 195-4)의 극적인 재회가 이뤄지기 직전 노부부는 20대의 옛 모습을 서로 확인하면서 안면 근육을 떨었다.”(세계일보, 1990년 3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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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회에는 후일담이 있다. 이윽고 작별의 순간이 왔다. 변호사로 성장한 아들은 할머니가 생전에 “교복 한 벌 제대로 못해 입혔다”고 안쓰러워하던 것을 기억해서, 처음 만난 아버지에게 양복감을 드렸다고 한다. 미처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아버지는 즉석에서 허리띠를 풀어 아들과 바꿔 맸다고 한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동안 나의 허리띠로 너를 늘 부둥켜안으마. 너의 허리띠로 항상 나를 부둥켜안아다오. 아버지의 선물에는 그런 뜻도 들어 있는 것 같아서 머릿속 깊숙이 짠하게 박힌 것이다.
“백발이 된 새색시는 눈물 대신 얼굴을 붉혔다.” 상봉 장면을 전하는 헤드라인이다. 아직도 우리가 이런 세월을 견디며 살고 있구나. 설악산의 첫눈과 금강산의 상봉에 관한 소식이 어우러져 눈물 여러 방울을 긁어내는 아침이다. 박태기나무, 콩과의 낙엽관목.
이기환 논설위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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