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양국 시민활동가, 100년을 말하다

(1)-1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었는가

ㆍ日정부, 한일협정 내세워 “모든 청구권은 끝났다”
ㆍ경향신문 · 국치100년사업공동추진위원회 공동기획


김민철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집행위원장



2009년 10월29일 재한 군인·군속 항소심 판결을 앞둔 도쿄고등재판소 재판정. 야스쿠니신사 합사 문제를 포함해 식민지배하의 강제동원 피해 문제 전체를 아우르는 소송이자 최대 규모의 원고가 참여한 소송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렸다. 일본에서 상대적으로 한·일간 과거청산 문제에 의지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뒤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재판정은 한껏 주목을 받았다. 이를 의식한 듯 재판장은 일본 TV 카메라의 법정 스케치를 허용했다. 짧지만 무거운 긴장이 흐른 뒤 판사는 “본건 공소를 모두 기각한다. 공소비용은 공소인들이 부담한다”라는 두 문장만 낭독한 뒤 사라졌다. 순간 ‘어딜 도망가, 나와라’ ‘이유를 밝혀라’라는 야유와 항의로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10년을 끌어온 재판이 불과 몇 초만의 판결로 어이없이 끝난 것이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 이병주 시베리아삭풍회 회장, 오구치 변호사 등이 2006년 5월25일 한국인 군인·군속피해자 재판 1심 패소 판결 직후 도쿄지방재판소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제공




한 시간 후 변호사를 통해 받아 든 판결문은 ‘원고의 청구는 이유가 없으며, 설령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었다. BC급 전범 등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도 한국정부의 대일청구요강 8개 항목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으나 모든 권리가 포기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기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 후인 지난 3월8일 나고야고등재판소 가나자와지부 제1부 법정에서는 일본국과 후지코시회사를 상대로 한 여자정신근로대의 항소심 판결이 있었다. 일제 말기 조선에서 12~15살의 어린 소녀들을 거짓말과 협박으로 끌고 가 강제노동시킨 후지코시사와 일본국가를 상대로 사죄와 손해배상 청구를 한 소송이었다. 이 날은 1차 후지코시사 소송에서 기업과 피해자가 화해를 한 전례가 있다는 점과 재판부가 일본국가와 기업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는 점, 그리고 야스쿠니합사 철회 소송을 제외하면, 일본에서 진행된 강제동원피해자 소송으로서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항소심 판결을 내리는 날이라는 점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건 날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들의 희망은 기각 판결로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할머니들의 분노는 재판소 내에서 항의농성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경찰이 투입되어 할머니들을 재판소 건물 밖으로 끌어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거짓말과 위협, 강제노동, 미불임금 등의 사실이 워낙 명백하고 국제법상의 불법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 사실마저 재판부가 부정하지는 못했다. 다만 피해자의 청구권한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강제동원피해자들의 재판투쟁이 이제 막바지다. 그러나 일본의 사법적 판단을 통한 피해자들의 인권과 피해 회복 요구는 대부분 거부되었다. ‘시효 소멸’, ‘국가 무책임론’ 등을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해 오던 일본정부와 재판부가 90년대부터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인한 개인청구권의 소멸’을 방어무기로 들고 나왔다. 한일청구권협정 2조의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는 문구가 이제 개인의 인권을 억압한 국가와 회사의 명백한 불법행위까지 면책을 부여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동원된 것이다.



정말 그러한가. 일본정부와 사법부의 주장대로 한국인 피해자의 모든 대일 청구권한이 한일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한다면, 이제 한국정부가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그간 애매한 태도를 보여 왔다. 개인의 청구권은 있다고 말했지만, 그 이상의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과거청산 문제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던 노무현정권 때 와서야 비로소 피해자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과 태도가 나왔다. 2005년 8월26일 한일협정 문서를 전면 공개한 정부는 강제동원피해자들을 보상하는 입법을 추진하면서 청구권 협정에 대해 분명한 견해를 밝혔다.




후지코시사 여자정신근로대 재판 항소심 판결 직전인 지난 3월8일 원고단과 지원단이 나고야고등재판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요지는 한일청구권협정은 한·일 양국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며,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고, 사할린동포, 원폭피해자 문제도 한일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에서 받은 무상 3억달러는 ‘개인재산권(보험, 예금 등), 조선총독부의 대일채권 등 한국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어 있다고 풀이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를 구제할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고 한 것이다.



이 해석은 강제동원피해자의 책임 문제를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며, 의의도 크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 일본정부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히긴 했으나, 외교문제 등을 고려하여 적극적인 추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할 의지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는 외교상의 위험부담도 컸고, 실현가능성도 없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일본정부와 사법부의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논리인가. 국제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와 강행규범(Jus Cogens)을 위반한 위법행위의 피해자에 대해 ‘가해국을 면책하는 조약은 무효다’라는 국제법상의 법리가 확립되어 있다. 99년 8월26일 국제연합인권소위원회가 ‘무력분쟁하의 조직적 강간, 성노예 및 노예유사관행에 관한 결의’를 채택하여,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는 군위안부와 같이 무력 분쟁하의 조직적 강간 등으로 인한 성폭력 피해자가 보상을 받을 권리는 평화조약 등을 통해서도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게다가 강제노동은 국제법상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범죄행위이므로, 강제노동 피해자들의 구제를 받을 권리가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은 32년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도 건강한 성년 남성으로 한정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강제노동조약’을 비준한 바 있다. 따라서 한일청구권협정의 청구권 포기조항을 위안부 문제나 후지코시 강제노동 문제에 적용하는 것은 국제법상으로도 허용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정부와 사법부는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정부가 나서야 한다. 한일청구권협정에 명시된 징용과 징병 등은 일본 측에 더 이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하더라도 BC급 전범, 원폭 피해자와 일본군위안부, 재일한국인, 시베리아 억류자, 사할린 잔류 한국인 등 한일협정 당시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문제를 두고 한국정부가 협상에 나서야 한다. 조약법상의 착오, 사정변경 등을 이유로 일본정부에 요구하면 될 것이다.



실제 60년 독·불간 포괄협상 과정에서 모든 청구권에 대해 완전타결 규정을 두었으나, 이후 프랑스가 강제징집자 등에 대해 추가보상을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독일은 81년 3월 독·불 이해증진 명목으로 ‘독·불이해증진재단에 대한 출연조약’을 만들어 2억5000만 마르크를 출연하였다. 협정을 부분 개정한 것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정치적 타결을 이끌어낸 셈이다. 길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가고자 하는 의지이다.


 


▲재한 군인·군속 피해자 재판



한국인 군인·군속 피해자와 유족이 2001년 6월 일본국을 상대로 도쿄지방재판소에 ‘야스쿠니 합사 철폐, 유골반환 등’을 요구하며 제소했다. 416명이라는 대규모의 원고단 구성과 ‘전후보상 재판의 총 결산’이라 불릴 만큼 강제동원 피해 전반에 걸쳐 사죄와 손해배상을 청구한 재판이라는 점, 일본에서 지원활동을 하던 단체들이 총 집결하여 참여한 재판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현재 최고재판소에 항고 중이다.



▲후지코시 여자정신근로대 재판



후지코시는 식민지 시기 도야마지역 최대 군수공장으로 12~16세의 어린 소녀 1624명을 사기, 협박 등으로 강제동원하여 노예노동을 강요한 회사이다. 1992년 9월 3명의 원고가 후지코시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청구기각 판결을 받았으나 재판부의 권유로 3500만엔의 지급과 위령비 건립 등의 화해가 성립됐다. 2003년 4월 원고 23명이 재차 일본국과 회사를 상대로 제소해 1심과 항소심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다. 현재 최고재판소에 항고 중이다.


 


▲글쓴이 김민철은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인 김민철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경희대에 출강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기획총괄과장·조사팀장,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현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집행위원장 등을 지냈다.




경희대에서 ‘조선총독부의 촌락지배와 촌락사회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제의 지배정책과 친일, 강제동원피해자, 일본역사왜곡 등 과거청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기억을 둘러싼 투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