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역사와 현실

시민항쟁 끝은 ‘실질적 사회 변화’

일반적으로 유교적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지금도 강한 정부가 존재하고 있다. 유교의 본산인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베트남, 싱가포르, 대만 등이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많은 약소국들 역시 동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독재정부를 경험했다.

 

한편으로는 국민들이 빠르고 효율적인 정치적, 경제적 독립을 위해 강력한 지도자와 정부를 원했기 때문이었고,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민주주의적 정치 경험이 일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세계적 차원에서의 냉전체제 역시 독재정부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냉전체제에 균열이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들은 더 이상 독재를 참지 못했고, 국민의 힘에 의해 정부가 교체되는 혁명과 봉기를 경험했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부산에서 열린 국민평화대행진에서 윗도리를 벗은 한 시민이 대형 태극기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베트남에서 시작된 국민의 힘은 이란을 거쳐서 아시아에서 필리핀과 한국으로, 그리고 동유럽에서는 폴란드를 시작으로 다른 동구권 국가와 러시아로 확산되었다. 중남미에서는 니카라과에서 시작해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에서 시민의 힘에 의한 선거로 독재정권이 무너졌다. 최근에는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이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대부분의 약소국들이 이렇게 1945년 이후 국민에 의한 정권교체를 한 차례 경험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세 번이나 경험했다. 1960년에 이어 1979년과 1987년 세 차례의 민주화 봉기를 통해 정권교체에 성공한 것이다. 1979년의 경우 국민의 힘이 바로 정권교체를 직접 이끈 것은 아니지만, 부산과 마산에서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응 방식에 따른 갈등이 10·26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한국 시민사회의 힘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한국은 다른 약소국과 달리 빠르게 민주화를 달성했다. 장기간 독재정부가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회에 비해 부정부패 사건이 빠르게 드러난 것도 시민사회의 견제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효율적 경제성장에도 민주화가 어느 정도의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한국의 민주화와 그 이후 사회의 다원화는 경제성장과 함께 세계 학자들이 주목하는 한국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런데 왜 한국 사회는 다른 약소국과 달리 세 번씩이나 이런 경험을 해야 했을까?

 

국민들의 함성은 정권을 바꾸었지만, 그 변화는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4·19혁명은 독재자를 몰아냈지만, 과도정부도 민주당 정부도 과거의 부정부패를 일소하기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질서를 이끌어야 할 과도정부의 수반은 이승만 정부의 장관과 서울시장을 역임했던 인물이었고, 민주당은 미군정 시기부터 기득권을 대표하는 정당이었다. 부마항쟁과 6월항쟁은 유신체제의 붕괴와 전두환 정부의 호헌 조치 철회를 이끌어냈지만, 준비되지 않은 야당의 분열은 국민의 바람에 호응하지 못했다. 변화를 원하는 시민들의 선거로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진보정부 역시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그 결과 국민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거듭 길거리로 나서야만 했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2008년 광우병 파동,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2014년 세월호 참사, 그리고 지금, 국민들은 다시 변화를 원하면서 그 힘을 세계에 확인시켜주고 있다.

 

분명 강력한 시민사회의 힘은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의 힘을 계승하는 자랑스러운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의 의로운 힘이 실질적 사회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도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그래서 ‘떠먹여 주어도 못 먹는다’ ‘대안이 없다’, 그리고 ‘잘할 수 있을지 신뢰가 안 간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지금 우리 사회는 민주화 이후 정치적으로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1987년 이후 민주화가 철저하게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위기는 민주화를 정착하고 매카시즘적 사회를 정상화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기회는 1960년과 1979년, 그리고 1987년처럼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분노만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과거를 성찰하면서 현재와 미래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러한 준비는 시민의 힘에 의해 실질적 사회 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시민혁명 이후 혼란을 겪고 있는 다른 국가의 시민사회가 벤치마킹할 수 있는 또 다른 한국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