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역사와 현실

진정한 비정상의 정상화

한국 민족은 35년 동안 식민지를 겪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87년까지 39년간 독재 치하에 있었다. 이 기간에 한민족 구성원들은 숱한 고난과 치욕을 받으며 살아야 했고, 인권과 자유는 단지 사치에 불과했다.

 

이 기간에 다른 한편으로 일부 사람들은 큰 이득을 보기도 했고, 불법적 권력의 편에 서서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불법적 합방조약으로 수립된 권력, 민주적 선거가 아닌 관권 선거와 쿠데타로 쟁탈한 권력은 사회의 모든 방면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했고, 이 과정에서 수혜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불법적 권력의 ‘분할하여 지배하라(divide and rule)’는 원칙은 수혜자와 피해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지 46년, 그리고 민주화로부터 4년이 지난 후인 1991년 이항녕 전 홍익대 총장은 자신이 일제강점기 군수를 지냈던 하동에서 자신의 부역에 대해 사죄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 압송되는 친일파들. 가운데 두루마기를 입은 이가 경성방직 사장 김연수이고, 그 뒤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최린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부터 50년 전인 1941년 하동군수로 부임해 1년간 재직한 적이 있습니다. 사과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저는 그 당시 공출 실적을 올리기 위해 죽창을 들고 다니면서 군민들을 괴롭혔던 사실을 사과드립니다. 저는 하동군수로 1년, 창녕군수로 3년간 있었는데 그때는 징용·징병·학병을 보내기 위한 일을 했습니다. 그때 그렇게 집을 떠나야 했던 분들 가운데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일본의 앞잡이로서 그런 일을 저질렀던 나쁜 죄인이었습니다.”(노컷뉴스 2015년 7월23일)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1인이었지만, 이후 일본의 전쟁범죄에 적극적으로 공조했던 최린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법정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총독부의 위협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끝내 민족을 배반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죄스럽고 부끄러울 따름이며, 자신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죽여달라고 호소했다.

 

여기까지였다. 불법적인 권력하에서 수혜를 입고, 민족 구성원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진정으로 사과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지나치게 사과에 인색하며, 세상이 바뀌어도 오히려 자신들의 범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학생을 전쟁터로 내몬 선생도, 불의의 전쟁을 위해 비행기를 헌납한 사업가도,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사법 살인을 저지른 독재시대의 공권력도, 독재권력의 유지에 공헌했던 지식인과 언론, 그들 중 진심으로 사과한 이들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지금 한국의 시민사회는 다시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 아니 세상을 정상화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 세상을 비정상적으로 만든 사람들의 고백과 사과가 필요하다.

 

왜 비정상적인 권력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했는가? 왜 그 권력이 비정상적인 것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는가? 아니 입을 다문 정도가 아니라 침을 튀겨가며 비정상적 권력을 칭송했는가?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는 사람들을 ‘종북’으로 몰아야만 했는가? 고백과 사과가 없다면, 비정상적 권력이 저지른 불법을 제대로 밝히기도 쉽지 않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잃어버린 7시간’에 대해서 밝히고자 할 때 많은 언론들은 위원회가 그 활동을 정략적으로 이용한다고 비판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지금 언론들은 ‘7시간’을 밝혀야만 한다며, 앞다투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십상시’에 대한 문건이 유출되었을 때 그들은 문건을 유출하는 것은 국기(國基)를 흔드는 행위라는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침묵했다. 시민들의 시위를 무법천지로 보도하고, 광화문의 세월호 유족 천막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언론이 작금의 촛불시위가 대한민국의 자랑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권력을 뒷받침하고 있었던 정치인뿐 아니라 언론과 지식인도 우선 사과해야 한다. 비정상적 권력이 유지되는 데 큰 공헌을 세우지 못했다 하더라도 권력의 비정상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았던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많은 시민들이 비정상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언론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그 언론들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반성하지 않고, 과거도 되돌아보지 않는 그들이 있기에 과거에 잘한 것만 보자는 국정교과서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성인들이 과거에 대해 성찰하고 사과함으로써 시민사회의 신뢰를 만들어갈 때 이 사회의 정상화는 가능할 것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