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역사와 현실

전쟁에 대한 기억과 교훈


미국에서 열린 ‘현대 전쟁의 기원’이라는 세미나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전쟁과 관련된 최신 연구들을 바탕으로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를 연구하는 세미나였다. 연구의 초점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맞추어져 있었지만, 세미나에 참여한 교수와 학생들은 제각기 다른 전쟁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세미나의 핵심적인 토론 내용은 기존의 전문가들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다보니 진정한 전쟁의 원인을 찾기 어려웠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치적 또는 경제적 위기가 있을 때 어떤 경우에는 그 위기가 전쟁이나 혁명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전쟁이나 혁명 없이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위기가 왔을 때 지도자나 사회 구성원이 선호하는 위기 해결 방식에 따라 전쟁이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세미나의 주요한 결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보다 더 주목을 끌었던 것은 20세기 인류 역사에서 주기적으로 왜 전쟁이 계속 발발하는가를 해명하는 문제였다. 20세기에 있었던 러일전쟁, 1·2차 세계대전, 만주사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유고 내전, 그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테러와의 전쟁 등을 보면 10여년마다 큰 전쟁이 발발했고, 그 전쟁으로 인류는 끔찍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인간은 이성을 갖고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전쟁이 있을 때마다 앞으로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거나 전쟁을 반대하는 사회적 여론과 시위가 나타나곤 했다.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은 그 대표적인 예이며,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 사람들 역시 전쟁을 통해서는 통일도, 평화도, 그 어느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전쟁은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모든 것을 파괴하고 단지 전쟁을 기획한 정치인들에게만 더 큰 이익을 줄 뿐이기 때문이다.

끔찍한 원자탄과 융단폭격을 경험한 일본인들과 독일인들 역시 그 고통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10여년이 지나면 인간은 또 전쟁을 하는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한국전쟁의 끔찍한 악몽이 지나가기도 전에 미국은 베트남전쟁을 치렀고, 이라크 전쟁이라는 또 다른 늪에 빠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을 만들어냈고, 전 세계는 테러의 공포 속에 살고 있다. 원자탄의 공포를 경험한 일본은 그로부터 70년도 지나지 않아 후쿠시마 사태를 경험했으며, 군사력의 해외 진출이라는 결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인간은 바보’이며,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해놓고 그로부터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인간은 다시 전쟁을 결정한다. 전쟁을 결정하는 지도자들이야 정치적 목적을 갖고 국민의 안위를 생각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치자. 그런 지도자를 뽑고 그런 지도자의 전쟁 결정을 지지하는 사회적 여론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반도는 지금도 전쟁의 위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지만, 통일을 논하기 이전에 불안전한 ‘정전체제’의 위협 앞에 지난 63년간 노출되어 있었던 안보 현실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호국의 달이라는 6월, 전쟁과 안보 위기 속에서 희생당한 분들과 가족들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정전협정에 서명한 지 3개월 이내에 고위급회담을 개최하고, 그 회담에서 최후의 평화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현실 속에서 어느 누구도 정전협정에 규정된 ‘평화적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또 다른 물리적 방법을 통해 통일을 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만이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망각은 인간을 끊임없이 위험 앞에 노출시킨다. 전쟁의 피해에 대한 망각이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올 것이며, 세월호 참사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인재에 대한 망각은 더 끔찍한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어떠한 결정이 이 땅에서 분쟁을 또다시 일으키지 않을 것인지 19세기 말의 상황을 기억해내자. 기억하지 못하고, 교훈을 얻지 못하면 인간은 또 다른 재앙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 속에서 지우지 말자.



박태균 ㅣ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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