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역사와 현실

선거와 역사 흐름의 순방향

4·13 총선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총선 당일까지도 대부분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집권여당의 일방적 승리를 예측했다. 과반뿐 아니라 개헌이 가능한 3분의 2 이상의 의석도 가능할 것 같아 보였다. 무엇보다도 야당의 분당으로 인한 어부지리가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아니 전문가들과 언론의 예측은 완전히 틀렸다. 4대강 사업으로 국가 재정이 고갈되고 정권의 사유화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세월호 참사로 300명 넘게 희생되었음에도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의 손을 들어주었던 선거 결과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문제는 그들을 전문가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언론도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는 진정한 언론이 아니었다.
1958년 5월2일 치러진 제4대 총선 당시 서울 갈월동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58년 5월2일 치러진 제4대 총선 당시 서울 갈월동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저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관행에 익숙해져 있거나,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공론을 왜곡하는 데 재미를 붙여왔을 따름이었다. 그러니 누가 민의를 정확히 읽을 수 있었겠는가.

국민들은 자신들의 뜻을 정확히 전달했다. 어떠한 캠페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에서 자발적으로 야당 후보의 단일화를 이루어냈다. 항상 호남표에만 기대를 걸었던 제1야당에 엄중한 경고도 내렸다. 여당에 대한 경고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 기세를 몰아서, 또는 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1년여 후의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뜻에 의해 재편된 정치적 상황 아래에서 국회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뜻이다. 대통령 선거 승리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정당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에 모든 목표를 집중한다면, 시간을 다시 허송할 것이다.

1958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약진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것은 아니지만, 여당의 독주를 가로막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여당으로서는 야당의 힘을 제압하기 위해 ‘2·4 보안법 파동’을 무리하게 일으켰고,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일방통행에 대해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야당은 주어진 기회를 이용하지 못하고 신·구파로 나뉘어 파벌 싸움에 매몰됐고, 여당은 아무런 반성도 없이 부정선거를 준비했다. 4·19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을 수 있었지만, 정권을 운영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국민들이 원하는 시대적 과제도 읽지 못했다. 결국 민주당과 신민당으로 갈라졌고, 민주당의 분열은 5·16 쿠데타 성공에 큰 공헌을 했다.

북풍으로 풍향계가 심각하게 흔들렸던 1996년 민의는 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1997년의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상황에서 야당은 국회 내에서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노동관계법을 둘러싼 파동이나 한보나 기아자동차 사태에 대한 정부의 조치에 여당과 야당 모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야당은 대통령 선거에서는 DJP 연합과 이인제 효과를 통해 간신히 승리할 수 있었지만, 국민들은 외환위기로 인해 고통받아야 했다.

2004년 총선에서 국민들은 열린우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주었다. 국민들은 스스로가 선택한 대통령을 탄핵한 국회를 심판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만을 믿고 움직였던 열린우리당은 국민들이 원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대북정책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주한미군의 역할 전환 과정에서도 진보적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수행해내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의 개폐도 실패했다. 국민이 원하는 바를 직시해야 했지만, 지지율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정부도 당도 모두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정권 재창출에도 실패했다.

지금 국회는 다양한 국민의 다양한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중심제에서 입법기관의 권한은 제한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할 수 있는 기능은 너무 크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까지도 견제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역사적 순방향 흐름에 역행했던 다양한 조치들이 다시 순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아야 한다.

민의를 왜곡하는 언론 개혁도 해야 하고,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부정부패의 고리도 끊어야 한다. 세계가 놀라고 있는 국정교과서 제도도 검인정으로 다시 돌려 놓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진상을 정확하게 규명해야 한다. 어버이연합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과감한 제도 개혁을 통해 민주화 이후 계속되어 온 역사적 흐름을 다시 순방향으로 돌려 놓아야 한다. 이것만이 여당이든 야당이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 될 것이다.



박태균 ㅣ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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