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흑사병과 의사 기 드 숄리아크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고 책 판매량도 늘었다. 이 소설은 1940년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오랑시에서 발생한 페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페스트와 맞서 싸웠던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들의 경험이 코로나19와의 싸움에 작은 도움과 위안을 줄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전염병이 파괴한 평범한 일상, 가공할   공포에 맞선 작은 인간들의 숭고한 연대, 그 속에서 더욱 빛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들려준다. 


하지만 소설 속 이야기와는 달리 실제 역사 속 전염병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 특히 700년 전 중세 유럽을 강타하고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간 흑사병은 인간 존재의 무기력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극심한 피해를 입었던 피렌체의 시민이자 작가였던 보카치오는 자신의 책 <데카메론>에서 “이 재난은 이렇듯 너무나 큰 공포를 남자들과 여자들의 가슴속에 심어 놓았고, 형제가 형제를 포기하고 아저씨가 조카를, 누나가 동생을, 그리고 더 흔하게는 아내가 남편을 버리게 만들었습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더 심하게는 부모가 아이들을 마치 자기 자식이 아니란 듯 돌아보지도 낳고 돌보기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라면서 인간이 흑사병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고발한다.


보카치오는 소설 도입부에서 전염병에 대한 여러 인간 군상들의 대응을 생생히 들려준다. “실컷 먹고 마시며 즐기고 노래하며 주변을 돌아다니고 닥치는 대로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 “밤이나 낮이나 이 술집에서 저 술집으로 옮겨 다니며 끝없이 흥청망청 마셔대고 그도 모자라 남의 집까지 쳐들어가 걸리는 대로 혹은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는 사람들” “얼마 못 살 것이라고 여기고 자기 자신은 물론 재산도 모두 포기한 사람들” 등 각양각색이었다. 그는 흑사병에 걸린 사람을 그대로 두고 도망치는 사람들이 가장 잔인한 심성의 소유자라고 말한다. 


당시 기독교 세계의 수장인 교황이 기거하고 있었던 아비뇽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흑사병이 아비뇽에 도착한 것은 1348년 1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고, 4개월 동안 6만20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급기야 교황 클레멘스 6세는 1348년 5월 아비뇽을 버리고 떠났다. 기독교 세계의 수장이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버리고 저만 살자고 줄행랑을 쳤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물론 교황 입장에서 보면 할 만큼 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황은 죽은 자들을 묻을 공동묘지를 마련했고, 죽어가는 이들에게 일괄 사면을 단행했으며, 의사들이 병의 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시신 해부 금지를 해제했고, 흑사병은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풀어 발생한 것이라며 유대인을 탄압하는 기독교인들을 비난하는 회칙을 발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황의 행동이 바람직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교황이 흑사병에 걸리지 않고 5월에 아비뇽을 무사히 떠날 수 있었던 것도 전염병 환자들과 근거리에서 접촉하지 않고 안전한 교황청 내에서 피신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황과는 달리 아비뇽에 남아 환자를 보살핀 헌신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교황 클레멘스 6세의 주치의였던 기 드 숄리아크(Guy de Chauliac, 1300~1368)는 떠나지 않고 아비뇽에 남아서 환자를 치료했다. 그가 도시에 남기로 결심한 이유는, 그의 말에 따르면 “불명예”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그는 환자를 치료하다 감염되었고, 6주 동안 병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 다행히도 그는 살아남았고, 흑사병이 다시 찾아온 1361년에도 여전히 역병 환자들을 치료했다.


코로나19에 맞서 싸우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공포를 조장하고 심지어는 사건을 왜곡하는 일부 정치인과 언론들이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예방수칙을 잘 지키고 타인의 안전을 배려하면서 차분하고 이성적인 대응을 지속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여러 나라들로부터 코로나19에 모범적으로 대응한 국가란 칭찬을 받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정부와 질병관리본부, 특히 최전선에서 전염병과 싸우고 있는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과 수고 덕분이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린다.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