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어제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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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이집트 아스완 하이 댐 완공 구정은 기자 ㆍ토양 염화·침식 심화 부작용도 고대 이집트인들이 수십m 높이의 기둥들로 이뤄진 룩소르와 카르나크의 신전을 세우고 ‘세계의 불가사의’로 불리는 거대한 피라미드들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나일강 덕분이다. 하지만 나일강은 이집트인들의 생명줄인 동시에 걱정거리였다. 현대에 이르러서까지도 나일강의 홍수는 사람들이 제어하기에는 힘든 상대였다. 이집트를 위임통치한 영국은 1889년부터 강이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댐을 쌓기 시작했다. 1901년 만들어진 아스완 댐은 후대의 아스완 하이 댐(High Dam)과 구분해 ‘로 댐(Low Dam)’으로 불린다. 로 댐만으로는 강의 파괴력을 막을 수 없었다. 인구는 계속 늘었고, 물을 더 많이 더 안전하게 쓸 방법이 필요했다. 52년 혁명을 일으켜 이집트공..
1907년 고종 황제 강제 양위식 유정인 기자 ㆍ환관 2명이 대역 ‘웃지 못할 촌극’ 1907년 7월20일 오전 8시 경운궁(현 덕수궁) 중화전.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기이한 양위식이 열렸다. 대한제국 황위를 물려주는 고종 황제도, 이어받을 순종 황제도 참석하지 않은 자리였다. 참석을 거부한 신·구 황제 대신 환관 두 명이 대역으로 동원돼 용상에 앉았고, 대신들이 하례를 올렸다. 웃지 못할 촌극이었다. 고종 황제 강제 퇴위의 직접적 원인은 ‘헤이그 특사 파견’이었다. 그해 4월 고종은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 3명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했다. 일제의 강압으로 맺은 을사조약의 부당성과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특사들은 세계 열강의 방관 속에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이..
1903년 제1회 투르 드 프랑스 개최 서영찬 기자 ㆍ신문 판촉 수단으로 탄생… 2400㎞ 질주 1903년 7월19일 프랑스 파리 외곽지역의 사이클 경기장. 32살의 모리스 가랭은 거친 숨을 내쉬며 경기장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순간 경기장 안팎에 운집한 시민 2만여명은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19일 동안 프랑스 동서남북을 가로질러 2400여㎞를 달려온 가랭은 자신이 우승자라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했다. 가랭은 처음 열린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투르 드 프랑스는 한 스포츠 신문의 판촉 수단으로 탄생했다. 당시 막 창간한 신문 로토(L’Auto)는 독자를 늘리기 위한 묘책이 필요했다. 로토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는 프랑스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최장거리 자전거 경주 대회였다. 하지만 이 대회는 모험이자 도..
1918년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가족 처형 임소정 기자 ㆍ‘2월 혁명’으로 비참한 최후 1917년 ‘2월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는 무너졌다. 300여년간 이어져 온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황후와 네 딸, 그리고 모계유전으로 혈우병을 앓고 있었던 어린 황태자와 함께 우랄 지방 예카테린부르크의 2층 저택에 감금됐다. 1918년 7월17일 새벽 황제 가족과 주치의, 하인 등 11명은 지하실로 끌려갔다. 총소리가 시작됐고 황제가 그리고 황후가 쓰러졌다. 황태자 알렉세이도 총상을 입고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보석이 박힌 드레스 탓에 첫 총격에서 치명상을 입지 않았던 공주들은 대검에 찔리거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았다. 처형실로 변해버린 지하실에는 탄환 연기가 가득했다. 2년이 흐른 뒤, 한 여자가 베를린 운하에 뛰어내렸다 구조됐다. 그..
1979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 집권 권재현 기자 ㆍ사형때까지 20여년 권력 휘둘러 1979년 7월16일 이라크내 소수종파인 수니파 지도자인 사담 후세인은 집권에 성공한다. 2003년 미국에 의해 전범으로 몰려 처형될 때까지 20여년간 권력의 최정상에 있었다. 그는 68년 범아랍민족주의를 신봉하는 바트당이 쿠데타를 일으켜 이라크 정권을 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이듬해 혁명지도평의회(RCC) 부의장으로 임명됐고 부통령을 거쳐 79년 이라크공화국 제5대 대통령에 올랐다. 취임 후 후세인은 미국의 지원하에 다수파인 시아파를 억압했다. 동시에 소비엔트 연방과 연합한 시아파 국가 이란과 맞섰다. 그는 80년 반대파인 시아파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이란을 선제 공격했다. 82년 한 시아파 마을을 찾았다가 시아파 반군이 자신을..
1997년 패션디자이너 베르사체 피격 김종목 기자 ㆍ27세 동성애자 청년에 의해 피살 1997년 7월15일 패션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가 미국 마이애미 오션드라이브의 자택 계단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베르사체는 해안 쪽에서 산책한 뒤 이탈리아 신문을 한 부 사들고 돌아오던 참이었다. 한 20대 청년이 백팩에서 총을 꺼내 현관문을 열려던 베르사체의 뒤통수를 향해 두 발을 쐈다. 이 청년은 27세의 앤드루 커너넌이었다. 사건 발생 9일이 지난 뒤 커너넌은 마이애미 해안의 한 보트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내렸다. 커너넌은 연쇄 살인범이었는데, 베르사체는 다섯번째 희생자였다. 패션계에서 베르사체의 죽음은 80년 존 레넌 암살에 비견할 정도의 충격적 사건이었다. 베르사체는 시대의 패션을 선도한 세계 최정상 디자..
1793년 장 폴 마라의 죽음 유정인 기자 ㆍ프랑스혁명 주역, 욕조서 피살 욕조 안에 한 남자가 칼에 찔린 채 숨져 있다. 한 손에는 편지, 다른 손에는 펜을 들었다. 무거운 어둠 속에 잠긴 남자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처럼 순교자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19세기 프랑스 고전주의의 대표적 화가 장 자크 다비드의 유명한 그림 에 담긴 장면이다. 이 그림은 실제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장 폴 마라의 암살 직후를 그렸다. 평소 마라를 존경하던 다비드가 그의 죽음 뒤 혁명 정부로부터 의뢰를 받고 그린 것이다. 마라는 프랑스혁명 선두에 섰던 급진주의적 혁명가이자 언론인이다. 그는 1743년 스위스 뇌샤텔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으로, 보르도에서 의학을 배운 뒤 런던과 파리에서 내과 의사로 활동했다. 의학을 연구하는 중에도 ‘노예제도의 사슬’을 저술..
1955년 러셀 - 아인슈타인 선언 권재현 기자 ㆍ‘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한 성명’ 1945년 8월6일 미국은 히로시마에 우라늄 핵폭탄을 떨어뜨린다. 사흘 뒤 나가사키에 또 한 번의 핵폭탄이 투하됐다. 히로시마 인구의 절반이 넘는 13만5000명이 사망했고 나가사키에서는 6만4000명이 사망했다. 핵폭탄의 가공할 위력 앞에 일본은 무릎을 꿇었다. 사상 처음으로 핵무기에 의한 집단학살을 경험한 인류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원폭 투하에 따른 방사능 후유증 피해는 2세, 3세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소련과의 아시아·유럽 지역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을 계속했다. 소련도 49년 9월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미국은 54년 태평양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