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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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미국 소녀 서맨사 스미스의 소련 방문 구정은 기자 ㆍ언론들 ‘어린 친선대사’에 열광 “안녕하세요, 미스터 안드로포프. 제 이름은 서맨사 스미스이고, 나이는 10살입니다. 새로운 일을 맡게 되신 걸 축하드려요. 저는 러시아와 미국이 핵전쟁을 할까봐 무서워요. 혹시 전쟁을 할 것인지를 놓고 투표를 하실 생각인가요? 그런 게 아니라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떤 일을 하실 생각인지 제게 얘기해 주세요.” 1982년 11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숨지고 유리 안드로포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미국인 소녀의 편지가 공산당 기관지인 프라우다에 실렸다. 스미스는 다시 미국 주재 소련 대사에게 다시 편지를 보내, 안드로포프 서기장이 답장을 보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83년 4월26일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친애하는..
1687년 뉴턴 ‘프린키피아’ 출간 서영찬 기자 ㆍ만유인력 등 현대 물리학 ‘시금석’ 흔히 로 불리는 아이작 뉴턴의 명저 가 1687년 7월5일 출간됐다. 만유인력, 관성, 작용과 반작용 등 자연의 제반 운동법칙이 에 담겨있다. 이 책은 현대 물리학에 시금석을 놓았고 자연에 대한 인류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의 탄생 뒤에는 ‘핼리 혜성’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가 있다. 아마도 ‘은둔형 천재’ 뉴턴이 핼리를 만나지 못했다면 가 세상에 나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핼리는 1684년 8월 어느날 뉴턴의 연구실을 방문했다. 뉴턴보다 13살 어린 핼리는 당시 28살로 영국 왕립학회 서기를 맡고 있었다. 그가 뉴턴을 찾은 이유는 왕립학회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못 푼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핼리는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궤도..
헤세의 출생과 헤밍웨이의 죽음 권재현 기자 ㆍ20세기를 풍미한 대표문학가들 헤르만 헤세와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름만으로도 무게가 느껴지는 20세기 대표작가들이다. (이상 ‘헤세’), (이상 ‘헤밍웨이’) 등 대표작들엔 운명에 맞서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다간 그들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응축돼 있다. 1877년 7월2일 독일에서 태어난 헤세는 독실한 신학자 가문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기숙사 생활의 속박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다. 한때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노이로제 증상에 시달렸다. 이 같은 경험은 소설 를 통해 비판적으로 표현된다. 고교 중퇴 후 서점의 견습직원, 시계 부품공장 견습공 등을 전전하며 문학수업을 시작한 그는 장편소설 가 6만부 이상 팔리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삶의 안정을 찾은 헤세는 이후..
1934년 ‘긴 칼의 밤’ 구정은 기자 ㆍ나치 내부서 권력 놓고 ‘피의 충돌’ 하인리히 히믈러는 나치 제국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유대인 강제수용소 건설과 대량학살의 주범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SS라는 약칭으로 알려진 아돌프 히틀러의 친위대를 이끈 것이 그다. 1900년 뮌헨 근교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히믈러는 23년 에른스트 룀이 이끄는 나치 돌격대(SA)에 가입했고, 히틀러·룀과 함께 뮌헨에서 ‘맥주홀 폭동’으로 알려진 폭동을 일으켰다. 2년 뒤에는 돌격대 내의 친위대에 가입했으며 친위대 안에서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히믈러는 맥주홀 폭동 때 히틀러와 룀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반면 자신은 그냥 풀려났던 것에 끝없는 회한을 표했을 정도로 맹목적인 히틀러 추종자였다. 히틀러도 히믈러를 점차 신임하게 됐고, 마침내 히믈러는 29..
1993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부정 적발 서영찬 기자 ㆍ유명 미용실을 고리로 ‘추한 거래’ 아름다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대회에서 등수에 들지 못한 참가자들은 진·선·미 등 입상 결과에 시비를 걸곤 했다. 선발 과정을 둘러싼 잡음도 적지 않았다. 상처가 오래 곪으면 터지게 마련. 결국 1993년 부정이 불거져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미스코리아 타이틀을 돈으로 사고파는 관행이 드러난 것이다. 93년 6월 검찰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주최 언론사 간부와 서울 명동의 유명 미용실 원장을 배임 혐의로 구속했다. 일부 대회 참가자의 가족들도 불구속 입건되는 등 수사선상에 올랐다. 참가자 측이 미용실 원장을 통해 주최 측 간부에게 거액의 돈을 건넨 사실이 줄줄이 밝혀졌다. 미스..
1933년 히틀러, 아우토반공사 설립 김종목 기자 ㆍ자동차도로 건설에 실업자 투입 1929년 대공황은 1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을 강타했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독일 경제는 파탄지경이었다. 32년 독일 노동인구의 40%가량이 실업상태에 빠졌고, 국민총생산은 1890년대 수준으로 퇴보했다. 경제파탄은 극좌와 극우 같은 극단적 정치세력과 노선을 불러오게 마련. 아돌프 히틀러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의회주의로 분열된 정치상황에서 극단주의에 기반한 나치당을 내세워 민주주의 세력을 전복시키고 집권한다. 33년 1월 총리가 된 히틀러는 자동차 전용도로 아우토반에 눈을 돌린다. 아우토반 건설계획은 이미 수립돼 있었다. 13년 베를린 근교에 완공된 자동차 경주도로가 아우토반의 시초였다. 녹지대와 조경에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울타리를 설치한 자연조화형 설계도..
1986년 마라도나 ‘신의 손’ 논란 유정인 기자 ㆍ멕시코월드컵 8강전 ‘손’으로 득점 아르헨티나에는 독특한 종교가 있다. 이름하여 ‘마라도나교’. 1998년 아르헨티나의 전설적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의 38번째 생일에 그의 열성팬이 창시했다고 한다. 신도들은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주기도문’을 외며, “그가 착용했던 유니폼을 경외하라” “아이들 이름에 디에고를 넣어라” 등의 ‘십계명’을 따른다. 성당 모형의 신주 꼭대기에는 축구화를, 종탑에는 축구공을 매단다. 1986년 6월22일 멕시코월드컵 8강전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의 경기에서 마라도나를 구국의 영웅으로 만든 ‘신의 손’ 사건이 있었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스포츠 경기는 한·일전과 같은 대표적인 앙숙 경기다. 82년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는 포클랜드(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 섬을 두..
618년 이연 당 건국·1815년 나폴레옹 몰락 권재현 기자 ㆍ두 황제의 엇갈린 운명 황제는 왕보다 상위 개념으로 제국의 세습군주를 높여 부르는 호칭이다. 동양에서 황제라는 명칭은 진의 시황제가 처음 사용했다. 이후 중국의 여러 왕조들은 모두 자국의 최고 군주를 황제라 불렀다. 한족이 세운 왕조뿐 아니라 중국을 정복한 몽골과 만주의 기마민족들이 세운 나라들(요·금·원·청)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에서 황제 칭호가 사용된 시점은 1897년 대한제국 수립 후 국권박탈까지 13년간이다. 서양의 황제는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이름과 칭호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칭호인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aesar Divi Filius Augustus)’에서 ‘임페라토르’와 ‘카이사르’가 황제를 뜻하는 영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