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한국전쟁 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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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중공군의 개입, 흥남철수 ㆍ성탄전야, 거대한 화형장처럼 불타는 흥남부두 ㆍ프랑스 종군기자가 본 6·25 번역·정리 | 정진국(미술평론가) 중공군 참전에 밀려 후퇴하는 유엔군이 혹한 속에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앙리 드 튀렌은 한 보병사단의 운명을 따라, 38선을 되넘어 서울로 귀환했다.] 도로에 수많은 트럭과 지프 등 온갖 차량이 줄줄이 남행하고 있다. 후퇴다. 뺨은 얼어붙고, 장교들은 침통하다. 수심이 가득한 긴 난민행렬이 논밭을 가로질러 빠져나간다. 병사들은 창피해한다. 미군 고참 하사관은 이렇게 말한다. (…) “우리더러 성탄절에 집에 가 있을 거라고 (맥아더 장군이) 약속했잖아. 이걸 타고 있으면 그렇게 되겠구먼.” 병사들은 수없이 많은 중공군 이야기를, 장교들은 핵폭탄 이야기를 한다. 서울에 눈이 온다. “찌르레기들이 ..
(3) 평양진격과 평양의 모습 ㆍ도시는 폭격에 지워졌다, 북한 사람들은 어디 있을까? ㆍ남한군 따라다니던 ‘청년 반공단’이 노략질을 일삼았다 번역·정리 | 정진국(미술평론가)· 손제민 기자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세운 차량이 평양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 [9월15일부터 유엔군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인천상륙과 서울수복, 남한 전역의 탈환이 10월1일 일단락되었다. 유엔군이 시간을 끌지 않은 유일한 시기였다. (…) 미군 1기병사단은 10월9일에야 개성을 지났다. 그런데 이날, 남한 3사단은 이미 북한 내 깊숙이 원산까지 가 있었다. 남한군 선봉대가 북한에 처음 진입한 것이다. 도쿄(총사령부)에서는 처음엔 이 소식을 부인하다가, 그 뒤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일이 침투하기 매우 어려운, 동부 연안 지역에서 발생한 만큼 수일간 미확인 ..
(2) 인천상륙과 서울수복 ㆍ200여 척 함선의 상륙작전 … 이 야만적 공포를 뭐라 할까 ㆍ이름 김몽경, 중앙청 태극기 첫 게양자는 경찰이었다 번역 | 정진국(미술평론가) 상륙정을 타고 인천으로 향하는 미 해병 선발대. [튀렌이 인천에 대한 첫번째 기록을 남겼다.] 인천, 1950년 9월15일. 네 척의 프랑스 군함과 뉴질랜드 소형함정 두 척이 여름 한복판에 중국해를 가로질렀다. 이 행렬이 또다른 14척의 군함과 합류하면서 전쟁터를 실감케 했다. 그렇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건 상상하기도 힘든 광경이었다. 이 상륙작전의 야만적 공포와 장엄을 정말이지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새벽 5시. 작은 보랏빛 섬들이 촘촘히 수놓인 인천만에서, 붉게 물든 여명을 배경으로 미 해군은 지상군의 수치심을 보복하겠다는 듯이 위세를 보였다. 20여㎞에 걸쳐..
(1) 미 해병대 부산상륙과 낙동강 전투 ㆍ프랑스 종군기자가 본 6·25 ㆍ육중한 전차 위에 몸을 싣는다, 전투가 다가온다 ㆍ“3% 주민이 땅 60% 가진 나라, 환상적인 드라마죠” 번역 | 정진국(미술평론가) “마침내 8월2일, 해병대를 가득 태운 첫 번째 함정 빅토리가 부산만으로 들어섰다. 필리프 도디는 둑에 있었다.” 이날 저녁, 이틀 동안 막막하게 기다리던 해병대가 도착했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팡파르를 울리며 환영식을 치렀다. 도시는 온 종일, 허탈에 빠진 듯했다. 지체되는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새벽 4시부터 원군의 도착을 기다렸던 종군기자들은 전혀 낙관할 수 없는 이런저런 추측을 하고 있었다. 오후 5시쯤, 한 선원이 우리에게 해병대 수송선단이 나타났다고 알렸다. 나는 즉시 초계정을 타고 멀리에 나타난 대형 선단 앞으로..
프랑스 종군기자가 본 6·25 번역·정리 | 정진국(미술평론가)·손제민 기자 한국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발발된 지 60년이 됐지만 한반도와 동북아는 전쟁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종전이 아니라 정전 중이며 아직도 서로 보이지 않는 대포를 쏴대고 있다. 들춰지지 않은 전쟁의 기록도 많다. 경향신문은 국내 최초로 프랑스 종군기자들이 기록한 한국전쟁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에서 생포된 인민군 포로들이 인식표를 목에 걸고 피복 지급을 기다리고 있다. 이 기록은 1951년 르네 쥘리아르(Rene Julliard) 출판사에서 펴낸 「한국으로부터의 귀환(Retour de Core'e)」(절판)에서 발췌한 것이다. 당시 연합군에 종군했던 AFP, 르 피가로 소속 네 명의 프랑스 기자(세르주 브롱베르제,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