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기적을 믿고 바라게 된 사회

흔히 서양 중세는 암흑시대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은 중세를 고대 문명의 찬란한 빛이 사라진 시대로 보았고, 이러한 관점은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시대에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중세는 이성으로 타파할 무지, 야만, 몽매, 폭력의 시대였다. 19세기 이후 서양 중세사회에는 어둠만이 아니라 빛도 있었다는 해석이 나타났다. 하지만 현대인의 이성적인 사고와 과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서양 중세는 여전히 너무나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였다.


중세사회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 중 하나는 프랑스와 영국의 왕들이 연주창 환자를 손으로 만져서 치료할 수 있다는 집단적 믿음이다. 프랑스의 카페 왕조는 11세기부터, 영국의 노르만 왕조는 12세기부터 이 기적의 치료를 시행했다. 사실 왕이 기적의 치료를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치료되었다고 믿었다. 연주창이라는 병은 결핵성 경부 임파선염으로, 결핵균이 목 부위에 염증을 일으킨 것이다. 병 자체는 치명적이지 않았지만, 치료하지 않으면 고름이 생기고 얼굴에 전파되어 모습이 너무 흉했다. 실제로 당시 기록에는 얼굴이 썩었다거나 상처가 썩은 냄새를 풍긴다는 표현이 많았다. 하지만 이 병은 자연적으로 상태가 호전되거나 없어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기적을 행하기에 안성맞춤인 병이었다. 그런 연유로 사람들이 왕의 손대기가 병을 고쳤다고 착각하기 쉬웠다. 게다가 사람들은 치료가 되면 왕의 치료 덕분이고, 그렇지 않으면 환자의 신앙심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중세 프랑스와 영국의 왕들은 이 기적의 치료를 정기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신성한 의례로 만들었다. 치료 행위는 “왕이 너를 만지고 신이 너를 치료한다”면서 성호를 긋는 것이 전부였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사이비 종교의 교주나 행할 법한 말도 안 되는 이 행사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프랑스 왕의 능력은 이웃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알려져, 1307~1308년 18명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 알프스를 넘어 험난한 여정을 감행했다. 영국 왕 찰스 2세는 1660년 5월부터 1664년까지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략 2만300명을 손대기로 치료했다. 태양왕으로 불리는 프랑스 왕 루이 14세는 1701년 5월22일 삼위일체 축일 하루에 2400명이나 되는 환자를 손으로 만졌다.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기적에 대한 믿음은 언제 어떻게 소멸했을까? 이 놀랍고 기이한 역사 현상을 연구한 프랑스의 중세사가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1886~1944)는 자신의 저서 <기적을 행하는 왕>에서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왕의 손대기 치료에 대한 믿음은 점진적으로 사라져갔다고 말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늘어나면서 이런 기적이 설 땅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가 되면서 왕의 손대기 치료는 웃음거리가 되었다. 볼테르는 <풍속에 관한 시론>에서 루이 14세가 그의 정부 중 한 명이었던 수비즈 부인을 “많이 만졌지만 치료하지 못했다”고 조롱했다. 하지만 계몽철학자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연주창 치료는 19세기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손대기 치료를 한 마지막 프랑스 왕은 샤를 10세였다. 1825년 5월31일 샤를 10세는 랭스에서 “국왕이 너를 만진다. 신이여, 이 사람을 치료해주소서”라고 외치면서 130여명의 연주창 환자를 손으로 만지는 행사를 거행했다. 이 마지막 손대기 치료는 열광적인 극우 왕당파들의 지지를 받긴 했지만, 여론의 비웃음을 샀다.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것을 믿을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베랑제라는 사람은 “새야, 기적을 행하는 왕이 모든 연주창 환자를 고칠 것이라고 하는구나”라면서 조롱의 노래를 불렀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현대인들에게도 기적을 믿거나 바라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예배를 보면 천국에서 신선한 공기가 내려와서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인도에서는 일부 힌두교 신자들이 ‘성스러운 소’의 오줌이 코로나19를 치료한다면서 이를 마시기도 한다. 이처럼 기적을 바라는 마음은 그만큼 삶이 고단하고 힘들다는 방증이 아닐까.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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