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대만에서 전쟁을?

대만에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6월인가 7월이었는데 더위가 말도 못했다. 교토의 여름을 겪은 적 있지만 그와는 또 다른 질식더위였다. 걷다 지쳐 들어간 식당은 더 더운 느낌이었다. 냉방 때문이 아니라, 맥주가 맛이 없었다. 게다가 차갑지도 않은 맥주라니. 주위를 둘러보니 술 마시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이 사람들은 이 더운데 밥만 먹는구나, 의아했다.

나는 서울과 일산 다음으로 도쿄, 교토에 오래 살았다. 늘 한국과 일본을 섞어서 반으로 딱 나눴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일본은 너무 매뉴얼에 집착하고 한국은 지나치게 임기응변이다. 일본인은 눈치를 좀 덜 봤으면 좋겠고, 한국인은 주위 의식을 좀 더 했으면 좋겠다는 뭐 그런 거. 세상에 그런 사회가 있겠나 했는데, 있었다! 대만. 타이베이 거리는 단정했지만 도쿄처럼 티슈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그런 살풍경(?)은 아니었다. 모두들 보행신호를 잘 지켰지만, 어지간한 때는 무단횡단을 하는 인간적인(?) 장면도 있었다.

그런 대만이 불안하다. ‘세계의 화약고 한반도’에 익숙한 한국 시민들에게는 낯선 일이지만, 지난번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방문 때 벌어진 일을 보면 실감이 난다. 올가을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관례를 깨고 3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보이는 시진핑이 ‘대만 통일’을 공약했다니 오싹하다. 홍콩 생각이 난다. 내 세대에게 홍콩은 주윤발·장국영·유덕화, 그리고 왕가위의 도시다. 쓸쓸하고 로맨틱한 공기 위를 ‘퐁당퐁당’거리는 광둥어(廣東語)가 타고 다니던 도시. 홍콩에도 딱 한 번 가봤지만, 저 형들에게 참 어울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 중국이 이 도시를 ‘진짜로 접수’한 이후, 홍콩은 더 이상 우리 마음을 콩닥거리게 하지 못한다. 

돌이켜 보면 인류는 일으키지 않아도 될 전쟁을 너무 많이 일으켰다. ‘안보의 위협’이나 ‘민족 통일’ 같은 거창한 명분을 핑계로 댔다. 일본은 아무도 자국을 위협하지 않는데, 한반도의 불안정을 이유로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러시아가 한국에 진출하면 일본이 위험해진다는 우려에는 일리가 없지 않으나, 전쟁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태평양전쟁도 마찬가지다.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을 두고 미·일 간 갈등이 높아진 건 맞지만, 꼭 전쟁으로 해결할 일은 아니었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나토의 동진에 러시아가 위협을 느꼈다는 것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 그게 곧바로 개전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 러시아의 개전 논리는 일본제국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다. 멀리 있는 상대의 위협을 느껴 주변국을 침략한다면, 한시도 쉬지 않고 전쟁이 발발할 것이다.

김일성은 민족 통일의 명분으로 한국전쟁을 감행했다. 금수강산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전쟁은 3년 넘게 계속되었다. 이웃끼리 서로 죽이는 참상까지 빚어냈지만, 전쟁은 겨우 휴전으로 끝났다. 아니, 휴전 아니라 정말 ‘민족 통일’이 되었다 한들, 300만명의 동포와 외국 청년들을 죽이고 달성한 ‘민족 통일’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이런 전쟁들에서 히로히토도 루스벨트도 김일성도 죽지 않았다. 목숨이 끊긴 것은 영문도 모르고 전쟁에 끌려들어간 각 나라의 철수와 영희들이었다.

시진핑이 ‘중화민족의 통일’을 열망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대만이 독립을 주장할 역사적 근거도 있지만, 중국이 통일을 고집하는 이유 역시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전쟁이라면, 중국의 철수와 영희들은 그런 ‘민족 통일’을 거부해야 한다. 1, 2차 세계대전의 충격 때문인지 한동안 잠잠했던 인류의 전쟁병이 다시 도지려 한다. 러일전쟁을 반대한 비전론(非戰論)도, 베트남전쟁을 규탄하던 반전운동도 지금은 뚜렷이 보이질 않는다. 트럼프에 두테르테에, 인류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 것처럼, 우리는 전쟁 절멸도 포기하려는가.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연재 | 역사와 현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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