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서 읽는 오늘

봄날은 간다

바람이 바뀌었다. 산에 들에 동네에 꽃들이 앞을 다퉈 피고 진다. 완연한 봄이다. 봄에 관한 시를 찾아보았다. <습재집(習齋集)>에 실린 권벽(權擘, 1520~1593)의 ‘춘야풍우(春夜風雨)’라는 제목의 시가 눈에 띈다.

‘꽃은 비를 맞고 피어 바람에 떨어지니/ 봄이 오고 가는 건 이 가운데 있다네/ 어젯밤 바람 불고 비 오더니/ 복사꽃은 만발하고 살구꽃은 다 졌다네’
(花開因雨落因風 春去春來在此中 昨夜有風兼有雨 桃花滿發杏花空)


봄은 비에 젖고 바람에 흩날리는 가운데 지나간다. 요즘 봄가을이 짧아졌다고들 한탄하지만, 그제나 이제나 봄은 짧고 변화는 무상(無常)하다. 권벽의 다른 시로 ‘대월석화(對月惜花)’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꽃이 막 피었을 땐 달은 아직 덜 차고/ 보름달 환한 후엔 꽃은 이미 져버렸네/ 가련한 세상일 모두 이와 같으니/ 어이하면 활짝 핀 꽃 달과 함께 볼거나’
(花正開時月未團 月輪明後已花殘 可憐世事皆如此 安得繁花對月看)


보름달을 맞이하니 꽃이 아쉽다. 복숭아꽃 살구꽃을 함께 누리기도 어렵고, 보름달과 꽃을 함께 누리기도 어렵다. 좋은 것들을 오래, 함께 누리는 것은 과욕일까.


봄꽃 심어지는 왕십리역 주변 (출처: 경향DB)


봄날에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우선 여러 베테랑 가수들이 불렀던 ‘봄날은 간다’. 제1절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하여 이렇게 끝난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같은 제목으로 가수 김윤아가 부르는 가사도 애틋하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등.

만화방창한 봄을 한껏 누려야 할 때, 봄날의 무상함과 애상(哀傷)이라니. 하도 짧기에 갈 것을 벌써 아쉬워하나.

생명이 있기에 유한하고, 유한하기에 아름다운 것들. 짧고 붙잡아 둘 수 없기에 소중하고, 가는 것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봄날과 생명들. 봄날은 간다고 슬퍼하는 것이겠는가.



김태희 | 실학21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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