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서 읽는 오늘

자식 잃은 슬픔

공교롭다. 이미 정해진 실학기행 일정에 따라 주말에 안산(安山)에 갔다. 안산 성호기념관과 성호 묘소에 방문한 그날, 근방에는 임시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실학기행으로 찾곤 하는 성호기념관 옆에는 단원미술관이 있어서, 안산은 내게 실학자 성호 이익과 화가 단원 김홍도를 떠올리게 한다.

성호에게는 외아들이 있었다. 그는 33세에 얻은 외아들 이맹휴를 끔찍이 사랑했다. 아홉 살인 아들에게 ‘기삼백(朞三百)의 주(註)’를 계산하게 했더니 명료하게 뜻을 이해해서 기쁘다며 그 기쁨을 시로 읊기도 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 과거에 합격해 벼슬에 올랐다. 그런데 성호가 71세였던 해에 병으로 죽고 말았다. 성호가 느낀 슬픔이 어떠했을까? 그가 지은 시, ‘시름(愁)’에서 엿볼 수 있다.

“시름은 푸른 바다처럼 깊고/ 혼령은 아득한 데로 떨어져// 언제 쓸쓸함 다할거나/ 올해 밤은 유난히 길어라// 책은 읽지 않아 먼지만 쌓이고/ 술은 친하여 배 속을 채우네// 원하노니 빠른 말 올라타곤/ 한낮 들판을 내달리고 싶어라”

성호 이익 선생의 사당인 첨성사 (출처 :경향DB)


즐겨하던 독서도 멀어졌다. 술로 시름을 달래곤 한다. 이로써도 마음을 달랠 길 없다. 빠른 말을 타고 들판을 질주하면 마음이 나아질까.

“시름을 어떻게 끊을까/ 3년 동안 눈과 서리네// 기나긴 밤 등불 매달고/ 누워 아침을 기다리네// 객석엔 한가한 대화 없고/ 책상엔 약 처방만// 칠순에 한 살 더하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슬픈 아픔만”

성호는 부인과 사별한 몇 년 후 외아들을 잃었다. 시름이 끊어지지 않는다. 밤은 왜 이리 긴가. 잠을 못 이루고 아침을 맞이한다. 손님과의 한가한 대화도 없다. 몸이 아파 책상엔 약 처방만 놓였다. 나이 71세에 생각해보니 온통 슬픔과 아픔뿐이다. 진도 앞바다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심정은 어떻겠나. 시름으로 날이 지고 또 새겠다.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더욱이 정부의 대처와 언론보도에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하니 오죽하겠는가.

잔인한 4월, 온 국민이 자식 잃은 슬픔과 미안함에 빠져 있다. 우리의 소중한 일상과 가족은 여전히 위험에 처해 있다. 안보를 그토록 강조하더니, 정작 일반 국민의 생명과 안전엔 무신경이다. 일이 벌어지면 무능하고, 사후엔 은폐·조작하여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선장과 선원은 탈출할 궁리만 하고, 선실엔 그저 그대로 있으라는 말이 반복된다. 어린 학생들의 어이없는 희생은 ‘제대로 된 나라’를 요구하고 있다. 그 응답은 산 사람들 몫이다.


김태희 | 실학21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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