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서 읽는 오늘

옛집을 읽다

지난 주말 한옥 구경이라는 뜻밖의 호사를 누렸다. 매주 옛글을 함께 읽는 동학(同學)들이 유적지 답사로, 계룡과 논산에 있는 사계고택(沙溪古宅)과 돈암서원(遯巖書院), 명재고택(明齋故宅)과 노강서원(魯岡書院)을 둘러봤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명재고택이었다.

명재(明齋)는 윤증(尹拯: 1629~1714)의 호다. 아버지 윤선거의 묘갈명 문제로 스승인 송시열과 틈이 벌어졌다. 송시열은 친구 윤선거가 사문난적 윤휴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못내 못마땅했다. 이런 불만이 제자인 윤증에게는 아버지냐 스승이냐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결국 사제 관계는 어긋났고, 그 불화는 노론과 소론의 대립과 맞물려 증폭되었다.

명재고택 주차장에 들어서니 바로 사랑채 건물이다. 사대부 가옥이면 응당 있어야 할 솟을대문이 없다. 후손이자 주인인 윤완식 선생이 사랑채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초연당(超然堂) 현판이 걸린 서재를 겸한 찻집으로 옮겨 차를 마시면서 명재에 관한 옛날 얘기를 했다. 집은 명재의 제자들이 스승을 위해 지은 것으로, 명재가 살지는 않았기에 ‘고택(故宅)’이라 했다.

충남 논산 명재고택(구 윤증고택) 전경 (출처 :경향DB)


윤 선생의 안내로 사랑채를 돌아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에 섰다. 그곳엔 안쪽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면서도 바깥 상황을 알 수 있는 교묘한 장치가 있었다. 안채 옆에 가까이 있는 광채(곳간)의 배치는 약간 비틀어져 있었다. 그 배치는 빛과 바람과 물에 대한 절묘한 이용을 위한 것이었다. 좁은 공간이면서도 하늘이 보이고, 안채에 햇빛이 들어오고, 계절에 따라 바람의 세기가 조절되고, 배수가 잘되게 고안되어 있었다.

모든 방의 문과 창은 다 나름의 고려가 있었다. 안채에서 어떤 손님들이 몇이나 왔는지 알고, 떠나는 친정 식구들의 뒷모습을 보는 등 안에 사는 사람이 바깥을 내다보는 상황에 대한 배려가 절묘했다. 또한 창을 통해 계절에 따라 바깥 경치를 액자에 담긴 그림처럼 완상할 수 있었다.

안채와 중문간채와 사랑채는 공간을 나누어 각 주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면서도 서로 통할 수 있게 연결되어 있었다. 설명을 들으며 옮기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사랑채에 와 있었다. 몇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던 사랑채는 문을 조작하면 일시에 넓은 강학당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두어 시간 설명을 들으면서 다들 옛사람의 철학과 지혜에 탄성을 금치 못했다. 안채 나무창, 사랑방 문틀 등 여러 범상치 않은 디테일을 이루 다 옮길 수 없을 정도다. 준비해 간 옛글은 읽지 않았다. 대신 옛집을 충분히 읽었기에.


김태희 | 실학21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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