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붕당정치의 화려한 부활

수년 전 역사학계에는 조선시대의 붕당정치를 미화하는 풍조가 있었다. 공부를 많이 한 선비들이 나랏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당파를 형성한 것이라며, 현대 민주국가의 정당과 흡사하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그런 말에 나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당쟁은 조선사회의 고질적 폐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사실대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어느 당파든 자기네는 군자(君子)요, 반대파는 몽땅 소인(小人)으로 몰아붙이지 않았던가. 심지어 반대당파의 지도자를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며, 성리학의 공적으로 지탄하기도 했다. 상대방의 벼슬도 모두 빼앗고, 사당도 헐어버리고, 문집까지 불태우는 등 반대파에 대한 극단적 탄압과 보복이 난무했다. 그러고도 전혀 부끄러워할 줄 몰랐다. 이런 일이 어떻게 민주사회의 정당정치와 비교될 수 있을까 싶다.


16세기에 시작된 조선의 당쟁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없어지지 않았다. 정국은 더욱 경색되었고 민생은 완전히 도탄에 빠졌다. 누구를 막론하고 자파가 저지른 실수와 잘못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문제를 반대당파의 잘못으로 돌렸다. 성리학의 경전을 깨알같이 인용해가며 자기네 편을 끝까지 감쌌고, 반대당파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당파는 학맥과 혼맥을 통해 대대로 이어졌다. 선비란 사람들이 당파가 다르면 대낮에는 서로 사귀지도, 왕래하지도 못했다. 나라는 사분오열되었고, 원한이 사무쳤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당쟁이 일어난 이유를 명쾌하게 분석했다.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등 삼사와 이조 전랑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한 것이 문제라 했다. 다들 그 자리를 놓고 싸움을 벌인다고 하였다. 이건창도 당쟁의 역사를 정리한 <당의통략>에서 믿을 만한 주장을 폈다. 사림이 공론을 중시한 나머지, 시비다툼이 고질화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서로 이해가 상반되어 당쟁이 일어났다는 결론이다.


중국의 당나라와 송나라 때도 당쟁이 제법 심했다. 그러나 중국의 당쟁은 수백년씩 대물림하며 계속되지 않았다. 수십년이 지나면 어느 당파든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당파의 생명력이 유난히 끈질겼다. 당파에 대한 충성이 대대로 이어졌다. 물론 당파마다 분파 작용 또한 활발해, 시대가 흘러갈수록 당쟁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저마다 당파의 이익을 지키려고 목숨을 바친 인사들의 용기를 높이 평가해, 서원과 사당을 지어 흠모의 정을 표했다. 그리하여 당쟁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실학자 이익은 ‘붕당을 논함’이라는 글에서 당쟁의 폐단을 날카롭게 분석하였다. 대강의 내용은 이러했다. 선조 때 조정이 둘로 갈라졌고, 얼마 뒤에는 넷이 되었다. 넷은 금세 여덟이 되었다. 대대로 자손들에게 당적을 세습시켜, 당파가 다르면 서로 원수처럼 여겨 잡아 죽였다. 그러나 당파가 같으면 함께 조정에 나아가 함께 벼슬하고, 한 마을에 모여 살았다. 다른 당파와는 영영 발길을 끊고 왕래하지 않았다. 어떤 이가 다른 당파의 길흉사에 참여할 양이면 수군거리며 비방했다. 다른 당파와의 결혼은 아예 불가능했다. 무리를 지어 배척하고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각 당파는 말씨와 복장까지도 달라졌다. 이것이 18세기 후반의 엄연한 현실이었다.


영조와 정조가 탕평책을 썼다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탕평’이란 미명 아래 외려 권력이 소수의 독점물로 전락하였다. 세도정치란 말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실학자 이익은 당쟁을 완전히 없앨 방법을 발견했다. 그가 찾아낸 해결책이 무엇이었던가. 그는 과거 시험을 줄이자고 했다. 아무나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또 관리의 근무평가를 엄격히 하여 무능한 자를 도태시키자고 주장했다. 요컨대 관직을 함부로 주지도 말고, 승진을 쉽게 허락하지도 말자고 했다. 또 능력발휘가 되도록 벼슬자리를 쉽게 바꾸지 말며, 이익이 발생하는 원천을 차단해 부정부패 따위는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하자고 했다. 철저히 대처해야만 당쟁의 악습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왕들은 이익의 간절한 충고를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나갔다. 과거 급제자는 시간이 갈수록 넘쳐났다. 관리의 승진은 더욱 쉬워졌고, 한 벼슬자리에 근무하는 기간은 더욱 짧아졌다. 엄격한 근무평가란 케케묵은 책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기를 바랄 수 있는가. 


요즘 한국의 정당들이 움직이는 모양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당쟁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다. 제 식구를 감쌀 때는 어찌 그리 정이 뚝뚝 흐르는가. 제아무리 파렴치한 일이라도 동료가 저지른 일은 무조건 비호하고 본다. 그러다가도 상대방을 헐뜯을 때는 승냥이로 표변한다. 당리당략을 위해서라면 멀쩡한 민주주의자도 일순간에 독재자로 둔갑시키는 재주가 있다.


나는 역사가 현재를 결정한다는 식의 역사주의자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오늘의 정치를 보면, 인간이 역사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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