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비판과 풍자를 허하라

광대들이 궁중에 들어와 놀이판을 벌였다. 그들은 화려한 언변과 포복절도할 몸놀림으로 세상사를 풍자했다. 이런 일이 중세 서양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도 이따금 연출되는 장면이었다. 따지고 보면 왕은 구중궁궐 깊은 담장에 갇힌 가련한 존재였다. 왕은 광대들이 들려주는 바깥세상 이야기에 반신반의하면서도 흥미를 느꼈다.

 

16세기에 어숙권이 쓴 <패관잡기>에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중종 때였다. 광대들이 임금님의 안전에서 어느 탐욕스러운 지방관의 비행을 극으로 재연했다. 19세기의 실학자 최한기는 그날이 설날이었다고 서술했다.

 

극 중의 탐관오리는 화려한 말안장을 탐했다. 그는 상인을 불러 관청 뜰에서 가격을 흥정하였다. 공무를 봐야 할 곳에서 사적인 거래를 했으니, 법률위반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안장값이 퍽 비쌌단다. 문제의 관리는 노랑이로도 소문이 자자했던 만큼 쉬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상인을 며칠씩이나 관청에 붙들어 놓고, 안장값을 깎았다. 직권을 남용해 상인을 압박한 죄가 추가되어 마땅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마침내 흥정이 끝났다. 관리는 공금으로 안장값을 치르고 나서 제 것으로 삼았다. 명백한 공금유용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말이 문제란 말인가.

 

연극이 끝나자 중종이 물었다. “정말 이렇게 한심한 일이 있었느냐?” “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함경도의 정평부사란 사람이 그랬다고 합니다.” 광대들의 대답이었다. “하면, 대신들은 사실 여부를 낱낱이 파헤쳐 내게 알리렸다!” 지엄하신 분부가 떨어졌다.

 

말안장 사건은 희대의 스캔들로 비화했다. 그러나 사건 관련자들은 엄연한 사실도 잡아뗐다. 거짓 진술도 일삼았다.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식의 발뺌이 그때라고 없었을까 보냐. 수사의 진도가 매우 느렸다. 열 달 남짓 시간이 흘러갔다. 중종 18년(1523년) 11월, 함경도 관찰사 허굉은 드디어 최종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그는 요샛말로 특검의 수장인 셈이었는데, 젊은 시절부터 강직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적발된 관리는 정평부사(종3품) 구세장이었다. 말안장값으로 그는 벼 30석과 콩 70석을 지불하였다. 곡식 100가마를 말안장 한 개와 바꾸었던 것이다. 요즘의 수입명품 가방만큼이나 귀한 것이 그때 그 말안장이었다.

 

본래 그 곡식은 부자 서눌동이 영평부에 바친 세금이었다. 세금장부에는 서눌동이 납부를 마쳤다고 떡하니 적어놓고, 태연히 말안장을 산 것이었다. 정평부사는 사욕을 채우기 위해 공금을 횡령한 것이다. 이런 깨알 같은 사실이 <조선왕조실록>에 모두 나와 있다. 신기할 지경이다.

 

구세장의 독직사건은 천천히 마무리되었다. 조정의 위신이 달린 문제라서 그랬을까. 수사가 시작된 지 18개월이 지난 뒤에야 최종 결론이 나왔다. 구세장은 곤장 100대를 맞고 먼 곳으로 유배되었다. 그가 기왕에 수령한 공직임명장들도 전부 회수되었다. 이제 그 이름은 탐관오리들의 명부 즉, <장오안(贓汚案)>에 기입되었다. 본인은 물론이고 아들과 손자까지도 관직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고작 말안장 하나 때문에 구세장에게 이런 불똥이 떨어졌을까? 몇 년 뒤 추가로 드러난 비리로 보아, 그는 정녕 탐관오리였다. 부사라는 높은 지위를 이용해서 그는, 초원참이란 시골 역의 노비를 훔쳐 사유물로 삼기도 했다니! 그에게는 공문서 몇 장쯤 위조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았다.

 

하필 그 사람만 탐관오리였을 리는 없다. 또, 그가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해서, 사회정의가 온전히 구현됐을 리도 없었다. 부정과 부패의 뿌리는 깊고 그 고리는 완강하였다. 세월이 흐르면 부정부패의 수법도 진화한다. 18세기의 조선 왕 정조는 그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일득록>에 이런 글이 보인다. ‘옛날에는 탐욕스러운 사람은 생김새부터 탐욕스러웠다. 청렴한 사람은 청렴하게 생겼다. 그래서 탐관오리를 구별하기가 쉬웠다. 이제 그렇지 않다. 어떤 이가 청렴하다는 소문도 없지만, 유독 탐욕스럽다는 말도 들리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들의 부패행위야말로 정말 해독이 심하다.’

 

21세기의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해를 넘겨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수사과정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처럼, 저들의 부패행위로 인해 세상이 망할 지경이다. 하건마는 끝없이 계속되는 범법자들의 말맞추기와 위증, 그리고 진술거부는 무엇인가.

 

까마득한 옛날 일이 되고 말았지만 옛날의 광대들은 고위층의 비리를 고발할 수 있었다. 그들은 풍자라는 무기를 가지고 탄핵수사에 시동을 걸기도 했다. 광대는 사회적으로 천대받았으나,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말썽 많은 그 ‘블랙리스트’가 다시 떠오른다. <변호인> 같은 영화를 다시는 못 만들게 하려고 했다던가. 권력의 비위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입을 봉하려 했다던가. 군사독재 시대의 위험한 사고방식이 문화계의 재앙을 넘어, 결국에는 권력의 심장을 겨눈 부메랑이 되었구나.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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