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소용돌이의 한국, 상자 속의 일본

“일본에서 음식 차리는 것을 보면 밥은 두어 홉을 넘지 않고 반찬도 두어 가지에 지나지 않아 몹시 간소하다. 다 먹으면 다시 덜어서 먹기 때문에 남기는 일이 없다. (중략) 여름에 파리와 모기가 매우 드문데, 이는 실내가 정결하고 지저분한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중략) 길가에서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모두 질서정연하고 엄숙한 분위기라 떠드는 사람이 없다. 인파가 수천 리 길에 이르렀는데 단 한명도 제멋대로 행동하여 행렬을 방해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20여년 전 일본 유학을 갔을 때 일본의 인상이 딱 이랬다. 일본을 가보신 독자들도 비슷한 인상을 갖고 계실 것이다. 그런데 이건 내 얘기가 아니고 1719년 일본에 갔던 조선통신사 신유한(申維翰)이 한 말(이효원 번역 <해유록(海遊錄)>)이다.

 

질서를 잘 지키고 줄을 잘 선다, 깨끗하고 위생적이다, 친절하다. 우리가 일본을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들이다. 일본이 근대화를 빨리 해서 앞서 있으니, 우리도 부지런히 따라가야 한다고. 하지만 신유한이 전했듯 그들이 줄 잘 서고 말 잘 듣는 건, 근대화 때문이 아니라 도쿠가와 시대부터 원래(?) 그랬다.

 

신유한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일본인들은 상하관계가 한번 정해지면 위아래의 구별이 엄격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고 두렵게 여기며 (중략) 엎드려 기면서 시키는 일을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받들어 행한다.” 지하철이 운행을 멈춰도, 세습의원들이 국회의 30% 이상을 차지해도 그저 조용한, 지금의 일본 국민과 비슷하지 않은가.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럼 조선인은 어땠나. “조선에서는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경쟁하는 데 몰두한다. (중략) 이 나라에서는 아랫사람이 윗자리로 올라가는 일이 곧잘 벌어지기 때문에 자연히 사람들이 머리를 굴리는 일이 많고 뇌물도 행해져 아침에는 출세하고 저녁에는 망하니 조용할 날이 없다.” 누가 한 말인지 참 신랄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며 웃음이 피식 나온다. 도쿠가와 시대 일본 최고의 조선통이었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1668~1755)의 조선평이다. 과거 노태우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 한·일우호의 상징적 인물로 언급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아메노모리 호슈는 거기에 살짝 덧붙인다. “일본 사람들은 제각기 그 분수가 정해져 있으니 좋은 나라다”(김시덕 번역 <다와레구사>).

 

실제로 최근의 한국사, 일본사 연구는 도쿠가와 시대 일본에 비해 조선사회가 신분이동이나 지역이동 면에서 훨씬 유동적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의 촌락은 일본에 비해 공동체적 성격이 희박했기 때문에, 촌락에만 생계를 믿고 맡길 수 없었던 백성들은 촌락을, 혹은 군(郡) 경계를 뛰어넘어 활발히 이동했다(지금도 한국은 이사왕국이다). 일본의 종족은 작은 범위에 분포하는 데 반해, 조선의 종족은 전국적으로 퍼져있다. 김해 김씨는 김해에만 있지 않고, 밀양 박씨는 밀양보다 다른 곳에 더 많다.

 

신분적으로도 그렇다. 사무라이는 공식적으로 분한장(分限帳)이라는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는 자들로 제한돼 있었지만, 양반은 법제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신분이 아니었다. 과거시험 합격으로, 혹은 이런저런 재주를 부려 양반이 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죽하면 정약용이 “온 나라가 양반이 되어 가고 있다”고 했을까. 실제로 우리는 현재 전 국민이 양반이 되었다. 차 모는 분도 ‘기사 양반’이고, 옆에 지나가는 사람도 ‘저 양반’이다. 전 국민이 족보에 등재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조선의 사회는 역동적이고 신분제는 유동적이었다(다르게 말하면 거칠고 혼란스러웠다). 중앙(서울)으로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의 사회, 이것이 조선이다(그레고리 핸더슨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반면 도쿠가와 일본은 수백 개의 상자가 위아래로 서열적으로 쌓여있고, 모두 그 상자 안에서 분수를 지키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였다. 그 안에서 열심히 하면 인정받지만, 그 상자를 벗어나 위나 옆 상자로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연 지금의 한국, 일본과 얼마나 다른가?

 

나는 민족마다 태고 이래의 민족성, 국민성 따위가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은 역사의 풍파를 겪으며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적어도 조선 후기, 즉 앞선 200~300년간의 역사가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특질은 지금도 강하게 우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이걸 공부하고 주목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현상들이 최신, 최고의 서양 이론이나 모델로 도저히 해명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이런 특질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강한 신분 상승욕, 서울지향성, 엄청난 규모의 정치집회, 여론정치의 경향, 활발한 해외이주, 하다못해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세라는 이상한 제도에 이르기까지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해명될 수 있는 문제들이 많다. 앞으로 이 칼럼난을 통해 이런 시각에서 한·일을 비교하며 얘기를 풀어가기로 하겠다.

 

박훈 서울대 교수 동아시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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