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시민과 선비

국가 권력과 민의 관계에서 정당성을 따진 것은 서양보다는 중국과 한국이 앞선다. 아무리 낮추어 잡아도 중국의 당나라와 우리의 고려시대부터는 그 관계에 대해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논리들이 나타났다.

 

조선시대 왕의 공부기관인 경연(經筵)에서 많이 읽힌 책으로 <정관정요(貞觀政要)>가 있다. 당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태종이 그의 재상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제왕학의 교과서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 실려서 더욱 유명해진 말 중에 임금과 백성의 관계를 갈파한 구절이 있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성공적인 권력 운영은 백성과의 관계에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유학을 통치 원칙으로 내세웠다. 유학에서는 권력의 정당성을 신(神)이나 무력이 아닌 ‘위민(爲民)’에서 찾는다. 백성을 권력 정당성의 토대로 삼았던 것이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그 원칙이 백성들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늘 관철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원칙은 많은 흔들림과 일시적 이탈 속에서도 권력이 제자리로 되돌아오게 하는 무게중심 역할을 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2016년 11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촛불집회가 50대 이상 한국인들에게 아주 낯설지는 않다. 1960년 4월에도 그랬고, 1987년 6월에도 그랬다. 촛불은 없었지만 그때도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고, 그 끝에는 국가권력의 구성과 작동 방식에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전과 다른 점들도 쉽게 눈에 띈다. 무엇보다 ‘지도부’가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현재의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집단들이 촛불집회에서는 전혀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어떤 유력한 정당도 눈에 띄지 않는다. 정당의 유력한 지도자들은 시민들 속에 겸손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거대기업의 강력하다는 노조의 경우도 상황은 같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노조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주류 언론으로 인식되었던 유력 언론사들을 무력화시키며 한국 언론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의미심장한 것은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식인’의 역할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현대 한국에서 지식인은 사회의 흐름에 늘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기성 권력 쪽에서든, 그 권력에 반대하는 쪽에서든 그것은 다르지 않았다. 지식인들의 부재에도 전대미문의 규모로 사람들이 광장과 거리에 모였고, 그들의 주장은 명료했으며, 자연스레 나타나게 마련인 폭력은 자제되었다. 이런 양상이 주말마다 반복되고 있다.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중에 마침내 매우 낯선 구호가 등장하였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1조이다. 대규모 거리시위에서 헌법 1조라니. 놀랍게도 그 구호의 메아리처럼 ‘제왕적’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을 당하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유혈을 동반하지 않고.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는 사(士), 즉 선비가 국가의 ‘원기(元氣)’라는 말이다. 선비가 국가의 으뜸 되는 주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등장해 현실성을 띠게 되었던 것은 조선이 건국되고 100여년쯤 지난 뒤부터였다. 그때부터 비로소 조선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조선이 되기 시작했다.

 

선비는 공부를 통해서 성리학적 이상이 제시한 인간성을 내면화하고, 민을 대변하며 사회적 공공성을 획득한 존재이다. 그가 관직에 있는가, 얼마나 높은 관직에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조선은 유학을 건국의 이념으로 내세우고 100년 정도가 지난 후에야 그것을 인격적으로 내면화한 인간형을 출현시켰다.

 

선비가 공적 영역에 집단으로서 등장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이 순탄한 기다림의 시간만도 아니었다. 그들이 정치적, 사회적 공공성을 드러내려 할 때마다 가혹한 정치적 탄압을 피할 수 없었다. 적어도 50년 이상 여러 차례 이어진 사화(士禍)가 그것이다. 선비들은 내적 역량을 키워 그것을 극복하며 마침내 국가의 원기, 즉 최고의 공적 존재가 되었다.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에서 큰 시위가 여러 번 있었다. 그 시위의 주체는 대개 개인적으로 한국 사회의 선진적 인자이거나, 그것이 아니면 조직된 집단이었다. 국민들은 그들을 응원했고, 그때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조금씩 발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민의의 주체가 되었던 인자들이나 집단은 기성세력으로 변했고, 민의에 반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사람들은 어떤 집단에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신하도록 요청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래된 헌법 1조를 새롭게 외치면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조금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한국의 민주주의가 마침내 시민과 만난 것 같다.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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