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여적]고조선 문명

고조선은 한국 최초의 국가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의 기점을 놓고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위서>와 <고기>를 인용해 단군왕검이 요 임금 시절에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썼다. 일연의 기록은 단기(檀紀)와 개천절 제정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단군조선을 신화로 규정한다. 역사 발전 단계상 그 시기에 국가가 형성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요 임금이 전설상의 인물인 데다 <위서> <고기>도 전하지 않은 문헌이라는 점도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국사학계는 고조선의 시작을 기원전 8~7세기 이후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단군조선 실재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제강점기 김교헌 등 대종교 계열 학자들은 <신단민사> 등을 통해 단군시대를 역사로 규정했다. 오늘날 재야학자들은 <환단고기> 등을 근거로 단군을 역사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단군조선을 둘러싸고 재야와 강단의 대립이 10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국문명연구학회가 개천절을 앞두고 ‘왜 지금 고조선 문명인가’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교육부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지원하는 ‘고조선 문명 프로젝트’의 결과 발표를 겸한 자리였다. 정부의 후원 사업을 결산하는 학술대회였지만, 핵폭탄급의 발표가 이어졌다. 6명의 제도권 학자들이 단군조선 실재설뿐 아니라 ‘고조선 문명’을 화두로 던졌기 때문이다.

 

신용하 울산대 석좌교수는 아날학파와 비교사회학적 방법론을 도입해 고조선이 단순한 고대국가가 아니라 세계 고대문명에 버금가는 ‘고조선 문명’을 일궈냈다고 주장했다.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는 중국 홍산문화의 발굴성과를 소개하며 단군조선이 요하의 하가점하층문화 단계에서 나타난 고대국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또 중국 산서성 도사유지(陶寺遺址) 발굴로 요 임금이 역사시대로 편입되고 있다면서 단군도 실재 인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표에 모두 동의하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문명사라는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고조선을 조명한 점은 의미가 있다. 발표 내용은 모두 ‘고조선 연구총서’(전 6권·지식산업사)로 간행됐다. 문헌과 유물에만 의지해 고조선을 연구해온 주류 역사학계의 반응이 주목된다.

 

<조운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