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경향의 눈]연암 박지원과 국립한국문학관

여러 달째 <열하일기>를 읽고 있다. 시작은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의 열하일기 강좌와 답사를 기획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강좌와 답사가 끝났으니, 지금쯤은 책을 놓았어야 맞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방에 들어 있다. 게으른 독서 때문만은 아니다. 목적을 위한 독서에서 즐기는 독서로 바뀐 것이다. 흔치 않은 읽기 경험이다. 앞서 <연암집>을 읽으면서 연암 박지원의 문장에 눈을 떴다. 그의 단편산문과 한문소설이 연암의 재치와 유머, 사물에 대한 착안점을 보여준다면, <열하일기>는 연암의 글쓰기 방식, 사회인식, 세계관을 펼쳐낸다. <열하일기>는 연암 문학의 정수가 담긴 장편 산문이다. 아니 ‘대하 산문’이다. 갖가지 사건과 생각, 이야기가 장강처럼 굽이친다.

 

연암에게 글쓰기는 진부함을 털어내는 작업이다. 그는 ‘따라하기’를 싫어했다. 그의 글쓰기 원칙은 독자성과 창의성이다. 천자문을 줄줄 외는 모범생보다 “하늘은 파란데 천자문에서는 왜 검다고 하느냐”며 따지는 아이를 주목했다. 연경을 다녀온 기록을 죄다 ‘연행기’, ‘연행록’이라고 이름 붙였던 게 못마땅했던 연암은 ‘열하일기’라는 튀는 제목을 달았다. 남들이 가지 못한 ‘열하’의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열하일기>는 5개월의 중국 체험을 일기체로 기록한 여행기이지만, 중복되는 내용은 한 군데도 없다. 노정기를 쓰면서 풍경, 인물, 역사, 문화 등 다른 스토리도 채웠다. 특기할 사건이 없으면 지난 경험이나 꿈 얘기를 하며 글쓰기에 변화를 시도했다. 산문이면서도 군데군데 시를 넣고, 소설로 각색하는 등 문체의 실험도 했다. 생활 백과사전으로 읽어도 좋다. 역사, 문학, 지리, 풍속, 종교, 경제, 국제정치에 대한 각종 지식과 읽을거리가 담겨 있다. 최고의 미덕은 상식을 깨뜨리는 통렬한 비판정신이다. 연암은 모두가 찬탄하는 만리장성을 비웃었다. 그가 부러워한 인물은 성벽을 쌓은 진시황이 아니라 장성 밖에서 외교정치를 했던 청의 건륭제였다. 중국의 천하장관으로 하찮은 기와조각이나 말똥을 내세운 것도 반전이다.

 

연암 문학에 대한 예찬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연암의 문장은 발표된 직후부터 필사본들이 유통됐다. <열하일기>는 200여년 전에 이미 부녀자를 위한 한글필사본이 돌기도 했다. <연암집>을 처음 간행한 창강 김택영은 연암을 중국의 사마천, 한유, 소동파에 견주며 ‘조선시대 최고의 산문작가’로 꼽았다. 연암 연구자인 박희병 서울대 교수는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독일에 괴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연암 박지원이 있다”고까지 말할 정도다. 그런데도 연암을 기리는 문학관이나 기념관이 없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가 태어난 서울 서대문 일대는 물론 젊은 날의 활동무대였던 종로에도 어떠한 표지가 없다. 현감으로 재직했던 경남 함양 안의에 세운 ‘연암 박지원 사적비’가 유일하다. 이렇다보니 중국 정부가 열하 피서산장 앞에 세운 ‘박지원 기념비’가 오히려 눈에 띌 정도다. 영국과 독일이 셰익스피어기념관과 괴테국립문학관을 그 나라 대표 문학관으로 내세우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

 

2년 넘게 부지 찾기에 고심해온 정부가 국립한국문학관을 서울 은평구 기자촌에 세우기로 했다. 연암과 같은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문헌과 자료가 이곳에 모인다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러나 부지 선정에만 몰두하다 보니, 정작 소프트웨어는 신경쓰지 못한 모양이다. 2022년 말 개관 목표라고 하니 시간이 많지 않다. 당장 문학관을 채울 콘텐츠를 고민해야 한다. 더 중요한 일은 우리 문학사의 체계 구성이다. 북한문학과 친일문학을 어떻게 포함시키고, 배제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세계화시대에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관계를 설정하는 일도 중요하다.

 

고전에서 현대까지 한국문학을 통시적으로 담아낸다는 데는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현대 문학은 담론도 무성하고 자료가 많아 콘텐츠 확보가 쉬운 편이다. 그러나 고전문학은 국문학과 한문학의 관계, 고전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의 계승 등 문학사가 아직 정리되지 못한 상태다. 빈약한 원자료를 어떻게 수집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한국문학을 구상하는 데 있어 연암 박지원의 독창적인 사유와 비판정신은 좌표로 삼을 만하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황해도 연암골에 은거했고, 개성에 묻혔다. 사행단에 끼여 중국을 다녀오면서 동아시아의 시각으로 조선을 조망했다. 연암 문학은 근대의 신문학으로 계승되었고, 남북을 아우르는 통일 문학과 세계화를 지향하는 세계문학으로 연결된다.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에 앞서 연암의 열린 눈으로 우리 문학지도를 그려보면 어떨까. 21세기에도 연암의 문학은 전혀 낡지 않았다.

 

<조운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