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역사 소비 시대

작가 이병주는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고 말했다.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도 했다. 역사의 가치와 존재감을 이처럼 명쾌하게 보여주는 말은 없을 듯하다. 과거 동양에서 새로운 왕조는 반드시 이전 왕조의 역사를 정리했다. 중국에서 24사를 편찬한 전통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고려 때 <삼국사기>를 편찬하고, 조선에서 <고려사>를 간행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역사만큼 인간의 삶과 세상사를 정리된 형태로 보여주는 분야는 없다. 역사를 구성하는 인물, 사건은 스토리가 넘친다. 매혹적인 역사는 그것을 쓰고 정리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오늘날 너나 할 것 없이 이곳저곳에서 역사를 쏟아내는 이유다. 조선왕조실록 등 다양한 사료의 번역과 보급은 대중역사가의 출현을 부추기고 있다. 이들은 책을 비롯해 TV, 영화, 팟캐스트, 대중강연을 통해 역사를 만들어내고 소비하고 있다. 역사를 쓰고 생산하는 주역은 더 이상 역사학자가 아니다. 오늘날 역사 시장은 대중역사가나 역사저술가들이 장악하고 있다.

 

영화 <안시성>의 한 장면

 

역사 소비 시대가 열린 지 오래다.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역사 서술은 대중에게 역사에 눈을 뜨게 한다. 한말 의병의 독립운동의 존재를 일반 시민에게 알린 것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TV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었다. 역사서에는 나오지 않은 양만춘의 스토리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은 영화 <안시성>이었다. 그럼에도 역사학계는 역사가 상품처럼 소비되는 행태가 불편하다. 대중의 입맛에 맞추다 보니 사실이 침소봉대되거나 파편화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적 서사로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역사를 ‘독립운동과 친일’처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해 버리는 것도 문제다.

 

역사학계가 지난 주말 ‘역사 소비 시대’를 주제로 전국역사학대회를 열었다. 주요 의제는 역사 소비의 주체로 떠오는 대중과의 소통이었다. 역사학계가 대중을 위한 역사 생산과 소비에 눈을 뜬 것은 늦었지만 바람직하다. 역사 쓰기와 소비는 전문가가 독점해야 할 일도, 대중역사가에게 맡길 일도 아니다. 역사가와 대중이 함께 써가는 ‘공공역사’나 ‘시민역사’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조운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