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여적]연해주 독립운동 대부 최재형

2004년 5월, 가수 서태지는 러시아 이주 140년기념사업회와 함께 연해주 핫산에 ‘지신허 마을 기념비’를 세웠다. 지신허는 1863년 착취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두만강을 건너가 극동 러시아에 처음으로 한인촌을 세웠던 곳이다. 발해의 고토 만주 연해주에서 <발해를 꿈꾸며>를 착상한 서태지는 비를 통해 1000년 전 발해와 100년 전 노령(露領)의 한인들을 기념하고자 했다.


1869년 9월, 함경도 경원에 살던 최재형 가족이 지신허에 합류했다. 노비 출신인 아버지와 함께 국경을 넘은 최재형은 9살 소년이었다. 고향을 떠났지만, 가정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두 해 뒤 가출한 최재형은 상선을 운영하던 러시아인 부부에게 입양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최재형은 선원생활, 무역업, 통역 등을 거쳐 러시아군 납품업자로 선정돼 큰 재물을 모았다. 러시아 정부 신임을 받아 정부 훈장을 받고, 크라스키노 한인자치기구 최고책임자로 임명되기도 했다. 


을사늑약 이후 최재형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의병을 조직해 국내 진격전을 벌이며 일본군과 싸웠다. ‘대동공보’와 같은 한인신문을 발간하며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안중근 의사와의 인연은 각별했다. 안중근은 최재형 의병부대에 참여했고, 독립투쟁 경비를 지원받았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최재형과 긴밀히 모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산가였던 최재형은 독립투사이면서 통 큰 독립운동의 후원자였다. 그의 삶과 투쟁은 연해주에서 시작해 그곳에서 마쳤다. 나이 60에도 반일 빨치산에 뛰어든 최재형은 1920년 4월 일본군에 총살당했다. 그는 진정한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다. 


28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최재형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최재형의 옛집을 보수해 문을 연 기념관에는 삶의 편린을 엿볼 수 있는 사진, 문서 등이 전시됐다. 입구에는 ‘따뜻한 난로 같은 사람’이라는 그의 애칭을 상징하는 ‘페치카’가 설치됐다. 최재형은 1962년 건국훈장을 받았지만, 삶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재형기념관 개관은 잊혀진 영웅에 대한 때늦은 오마주다. 안중근 단지동맹기념비, 이상설 선생 유허비, 홍범도 기념비 등과 함께 챙겨봐야 할 연해주 독립운동의 명소가 될 것 같다.


<조운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