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쫄지마, 인문학

자문 회의란 데를 참여할 때가 있다. 나 같은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고고학, 건축사,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참여하는 역사 관련 사업의 회의다. 문헌을 다루며 연구하는 입장에서 고고학과 건축사는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여기서 ‘낯설지 않다’는 말은, 일부는 제대로 알아듣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들을 필요가 있는 말인가 아닌가 정도를 가늠한다는 뜻이다.

얼마 전 참여한 자문 회의도 그러했다. 고고학, 건축사 분야 관련 얘기를 들으면서 조금은 알아듣고 나머지는 흘려들으며 넘기고 있었는데, 소프트웨어 발표가 시작되며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일단 알파벳 대문자 약자가 많은데,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이 없었다.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까지는 알겠으나, 세 글자 대문자 알파벳이 난무하자 기가 죽기 시작했다. 아, 어렵다. 오늘 밥값은 하고 갈 수 있을까.

다른 자문위원의 발언이 하나씩 끝나고 내 차례가 되어 약간 쫀 상태로 발언하기 시작했다. “제가 다른 분야는 모르겠고, 제가 아는 부분만 말씀을 드리자면…”으로 시작하여 그날 들은 발표 중 문제가 있는 부분을 지적했다. “太廟는 西上이지만 여기는 昭穆이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로 해석하시면 안 되고, 이런 오류가 생긴 건 해당 儀注의 띄어 읽기를 잘못하셨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말을 하다 문득 깨달았다. 그 자리의 다른 사람들 역시 내 얘기를 띄엄띄엄 알아듣는 정도거나 전혀 못 알아듣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 내 얘기도 너무 전문적이어서 세상에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심지어 한국사라 할지라도 연구 시기나 세부 분야가 달라지면 무슨 얘긴지 알 수가 없다. 그만큼 나는 지극히 전문적인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고 나자,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아니, 도대체 왜 쫀 것이냐? 나도 충분히 전문가요, 그 지식을 아는 사람 숫자로만 따지면 내가 훨씬 희소할 텐데? 거기다 그 자리에 여러 분야를 모은 것은 자기 전문을 가지고 얘기하란 것이지 모든 분야를 다 망라하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내가 왜 이랬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서점에는 ‘한 권으로 끝내는’ 시리즈가 난무하는 데다 조금만 한자어를 쓰면, 소통이 안 되는 상아탑에 갇혀 있다느니, ‘인문학의 위기’가 괜히 온 게 아니라는 식의 공격을 많이 받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기가 좀 죽었던 듯하다. 내가 아는 건 별게 아닌 것 같고, 남이 늘어놓는 건 대단한 것 같아서 말이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사서삼경을 배우며 한문을 익혔다. 고문서를 읽으려면 이두를 알아야 한다 해서 그것도 배웠다. 옛날 의례와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 그 나름의 특수 용어와 개념도 익혔다. 다른 나라의 연구도 흡수해야 했기에 영어 외에도 여러 언어를 새로 배워야 했다. 이렇게 오래 공부를 했는데도 여전히 모자란 것이 많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자문 회의에서 저만큼의 얘기를 할 때에는 그 수면 아래에서 엄청난 물장구를 쳤기에 가능했다. 인문학의 최전선에서 전문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물장구를 열심히 치는 사람들이다.

‘하룻밤에 읽는’, 혹은 ‘한 권으로 끝내는’ 시리즈로 인문학을 접하면 이런 물장구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책 몇 권이면 되는데, 대학에 왜 이런 과들이 계속 있어야 하냐고 생각할 것이다. 산업발달에 저런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저렇게 분명하게 해석해주지 않으면 그 유적의 상상도를 그릴 수가 없고, 그 상상도를 못 그리면 VR이고 AR이고 다 불가능해진다. 인문학은 교양의 한 부분을 구성하긴 하지만 교양만인 것은 아니다. 반도체 기판을 설계하는 능력만큼이나 인문학도 전문적인 지식이다. 다짐했다. 다음에 저런 기회가 오면 “제 얘기가 너무 전문적일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서두를 떼기로.

<장지연 대전대 H-LAC대학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연재 | 역사와 현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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