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퓨전한복과 꼰대적 시선

‘퓨전 한복’의 고궁 무료 입장을 폐지하겠다는 종로구청의 방침을 둘러싸고 찬반이 팽팽하다. 찬성하는 쪽은 국적불명의 한복이 전통을 파괴한다고 주장하고, 반대하는 쪽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꼰대’ 발상이라며 맞서고 있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꼰대 맞다. 한때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금지하고, 염색머리와 캐주얼한 출근 복장을 고깝게 보는 꼰대들의 화살이 한복을 겨눈 결과다.

 

두발과 복장은 자유지만 한복은 전통이니 지켜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전통 한복이란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전통 한복이라고 부르는 옷은 정확히 말해 조선 후기 한복이다. 조선시대 여성 한복 저고리는 후기로 갈수록 기장이 짧아지고 소매가 좁아진다. 치마는 풍성한 볼륨을 선호하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짧고 타이트한 저고리에 볼륨 있는 치마를 매칭한 ‘상박하후(上薄下厚)’ 스타일은 조선 후기에 대유행을 이루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전통 한복으로 자리 잡았다.

 

‘단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전통 한복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비난 일색이다. 그들은 당시의 한복을 ‘복요(服妖)’라고 했다. 세기말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요상한 옷, 다시 말해 말세의 징조라는 뜻이다. 나름 진보적이었던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조선 후기 한복도 당시에는 퓨전 한복이었던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퓨전 한복이 국적불명이라지만 아무리 봐도 중국의 치파오나 일본의 기모노로는 보이지 않는다. 굳이 구분하면 한복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정통 한복 디자이너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한복과 별로 다를 것도 없다.

 

치마를 부풀렸으니 전통 한복이 아니라고? 치마 부풀리기는 고려시대부터 유행했다(<송사> ‘고려전’). 이 유행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다. 풀 먹인 속치마를 10여벌씩 입고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네모나게 부풀렸다. 치마를 어찌나 부풀렸는지 “방문을 통과하지 못할 정도”였다(이희경, <설수외사>). 치마 부풀리기는 전통이다.

 

치마가 짧아서 전통 한복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지만 조선시대 풍속화를 보면 빨래하는 아낙도, 물 긷는 처녀도, 주막집 주모도 치마를 무릎까지 접어올려 속바지를 드러냈다. 일하는 여성에게 긴 치마는 방해다. 어차피 접어 입을 거, 짧게 만든다고 뭐가 문제인가. 중국은 현대에 와서 치파오의 긴 소매를 싹둑 잘라 민소매로 만들었다. 한복은 가위질하면 안되는가. 속바지, 속치마를 갖춰 입지 않아 문제라고? 노출을 금기시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논리라면 속곳까지 갖춰 입어야 한다.

 

기생처럼 보이는 ‘어우동 한복’이 눈에 거슬린다고? 세계 미인대회에 출전한 한국 대표들도 즐겨 입던 옷이다. 한때는 세계에 자랑하더니 이제 와서 꼴보기 싫다는 이유는 뭔가? 기생 같아서? 지금의 전통 한복이야말로 기생들이 유행시킨 옷이다. 이덕무는 당시 한복이 “전부 기생에게서 나온 것”이라며 “규방 여인이 기생옷을 입는다”고 개탄했다(이덕무, <사소절>). 장소가 고궁이라서 불경해 보이는가? 조선시대 사람들이 고려 수도 개성의 궁터 만월대를 놀이터로 삼았던 것처럼 오늘날 고궁 역시 시민의 놀이터다. 무슨 옷을 입고 오건 자유다. 고궁의 ‘품격’이 걱정이라면 고궁을 가득 메운 등산복 차림부터 규제하는 것이 순서다. 외국인에게 한복 잘못 알려질까 걱정이라고? 명절에 입는 반짝반짝하고 알록달록하고 퍼석퍼석한 한복을 전통 한복이라고 알고 있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퓨전 한복이 선을 넘었다고 비난하지만, 그 선은 누가 그은 것인가. 숱한 변화를 겪은 한복의 역사를 외면하고 편협한 소견으로 한복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꼰대가 그은 선이다. 젊은이들의 한복 문화는 고궁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런데 그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을 꼰대가 엎으려 한다. 전통 보존이라는 명분이다. 전통은 안개나 구름과 같다. 멀리서 보면 분명히 있는데 가까이 가면 손에 잡히는 게 없다. 한복도 마찬가지다. 전통 한복과 퓨전 한복을 명확히 구분하는 건 불가능하다. 종로구청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달라고 문화재청에 요청했다는데, 한복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갈리는 마당에 문화재청인들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장담하건대 합의된 가이드라인은 절대 만들 수 없다.

 

중국산 저가 한복의 범람으로 국내 한복산업이 타격을 입은 건 안타깝지만, 한복 대중화의 일등공신이 중국산 한복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 한복도 특성화, 고급화로 활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이 전통 한복을 외면해 걱정이라면 청년 디자이너들을 지원하라. 그들이 톡톡 튀는 감각으로 더 참신하고 개성적인 한복을 만들어 경쟁한다면 고궁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퓨전 한복에 대한 일각의 거부반응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내 눈에도 어색하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다고 거부하면 발전은 없다. 시대가 달라졌다. 한복도 달라져야 한다.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혁신은 반드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 아무도 불편하지 않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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