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진실 아닌 걸 진실로 만들면 폭력”

가짜 뉴스라는 유령이 인터넷, 모바일, 텔레비전을 배회한다. 매일 수많은 가짜 뉴스들이 만들어지고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간다. 가장 염려스러운 문제는 근거도 없고, 허무맹랑하기 이를 데 없는 가짜 뉴스들을 사람들이 믿고 다시 퍼뜨린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는 허상을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허상은 때론 실제보다 더 많은 힘과 파괴력을 갖는다. 때론 가짜 뉴스는 역사를 왜곡하고 선거의 결과를 바꾸며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가짜 뉴스는 확증편향이라는 인간의 심리적 경향성을 잘 파고든다. 확증편향이란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으로 사실보다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심리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실은 외면하거나 부인하며 거짓이지만 자신의 성향에 맞는 가짜는 쉽게 수용하는 것이다.

 

내가 공부하는 중세 유럽 사회에서도 가짜 이야기와 허무맹랑한 거짓들이 넘쳐났다. 그중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온 편지였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하늘에서 예수와 그의 대리인들이 보낸 편지”를 진짜라고 확고하게 믿었다. 중세 최고의 가짜 뉴스는 아마 “사제 요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 거짓 이야기가 400년 동안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세계를 떠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유럽에 이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중엽이었다. 1145년 교황청을 방문한 자발라(시리아)의 주교 위고는 교황에게 동방의 십자군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슬람 세계 너머에 네스토리우스교(동방으로 전파된 기독교의 한 분파)를 믿는 사제 요한이 다스리는 위대한 왕국이 있으며 이 요한 왕이 페르시아 군대를 물리친 이야기를 전달했다. 이로부터 약 20년 후인 1165년경 존재하지도 않는 사제 요한이 비잔티움 황제 마누엘 콤네누스에게 편지까지 보내왔다. 가짜 요한은 편지에서 자신을 기독교를 믿는 사제이며 아시아에 있는 거대한 왕국의 왕이라고 소개하면서 비잔티움 황제에게 자신의 왕국을 방문해 많은 것들을 함께 나누자고 청한다. 그리고 가짜 요한은 중세 최고의 허풍스러운 이야기를 지어낸다. “우리 왕국은 3개의 인도를 지배하고 있으며 사도 도마의 육신이 안식을 취하고 있는 남부 인도까지 뻗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 왕국은 사막을 가로질러 태양이 뜨는 곳까지 닿아 있습니다.” “72개의 왕국이 우리에게 복종하고 공물을 바치고 있습니다.” “지상 낙원에서 흘러나오는 비손이라 불리는 강이 우리 왕국을 통과합니다.” “우리 왕국 전체에 꿀과 우유가 넘쳐납니다.” “궁정에서는 매일 3만 명이 식사를 합니다.” “매달 7명의 왕, 62명의 공작, 365명의 백작들이 우리 궁정을 방문해 식사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가짜 요한 왕이 비잔티움 황제에게 편지를 쓴 궁극적인 이유는 기독교인들 간의 반목과 갈등을 멈추고 그 힘을 이슬람을 공격하는 데 쓰자는 것이었다. 그의 편지는 일종의 정치적 선동이었다.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가짜 뉴스를 끊임없이 만들어 유포시켰다. 십자군 시절 기독교 저술가들은 이슬람에서 술과 돼지고기가 금지된 이유는 무함마드가 술에 만취한 채 돼지에게 잡아먹혀 죽었기 때문이라거나 술과 돼지고기를 먹고 취한 천사가 여자를 유혹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날조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에 관해서는 더 다양한 가짜 뉴스들이 만들어졌다. 무함마드는 미천한 신분으로 돈 많은 과부를 속여 결혼해서 마술과 간계를 써서 권력을 장악했고,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방탕과 혼음을 허용했다는 음해성 이야기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무함마드를 간질병 환자로 취급하거나 로마 교황으로 선출되지 않자 화가 나 아라비아로 가버린 타락한 추기경이라는 헛소문도 떠돌았다.

 

물론 이슬람이 기독교의 하나님을 비록 서로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믿고 찬양하고 숭배하며, 마리아와 모세와 같은 기독교의 예언자들을 공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한다는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제 요한 이야기’라는 가짜 뉴스에서 알 수 있듯이 중세 유럽의 기독교 사회에서는 허구와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 진실보다 더욱 큰 힘을 발휘했다. 문제는 이 가짜 이야기들의 힘이 때론 폭력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사제 요한은 비잔티움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기독교인들 간의 싸움을 멈추고 십자군을 도와 이슬람을 물리칠 것을 촉구했다. 종종 ‘하늘 편지’도 이슬람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구하라는 하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가짜 뉴스와 악의에 찬 선동에 현혹된 농민들과 기사들은 무기를 들고 십자군을 떠났고 도중에 유대인 마을을 약탈하고 학살을 저지르기도 했다. 실제로 3차 십자군 참가자들은 성지로 가는 도중 임산부는 물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2500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무차별 학살했다. 거짓도 다수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진실이 된다. 토마스 만은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모두 폭력이다”라고 가짜와 위조가 진실을 압도했던 중세 유럽 사회의 모습을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오늘날 우리 주변을 배회하는 가짜 뉴스의 위험성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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