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93년 12월2일 “날치기는 생각하기조차 싫다”

국회의장에게 누가 충고하고 항의한다는 말이냐. 국회의장이 여당 눈치만 살피는 것 그 자체가 개혁돼야 한다. 여야 모두 군사문화시대의 생각을 버려라.”

1993년 7월 초 이만섭 국회의장이 의사진행 절차를 따지러 온 집권당(민자당) 원내총무에게 뱉은 말이다. 당시 여당은 대정부 질문 때 김영삼 대통령을 비난하는 야당(민주당) 의원의 신상 발언을 왜 허용했느냐며 이 의장을 비겁자, 배신자라고 공격했다. 이 의장은 취임 초부터 “내가 입법부 수장으로 있는 한 날치기는 절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날치기는 생각하기조차 싫다. 국회는 결코 여나 야만의 국회가 아닌 국민 모두의 국회”라고 강조했다.(1993년 12월2일자) 이 의장은 실제로 새해 예산안을 강행처리해 달라는 YS의 요구를 거부했다.




역대 국회의장은 제헌의회 이승만부터 19대 정의화까지 모두 27명이다. 국가 권력서열 2위이자 국회 최고 지도자인 의장의 리더십은 정권 속성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타났다. 몇해 전 의회발전연구회가 낸 보고서를 보면 초대 이승만과 신익희 의장은 국회의원 다수의 동의로 선출돼 강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반면 이기붕 이후 5공화국까지의 의장들은 강한 당파성을 띠면서도 권한은 약한 ‘정당 대리자’에 가까웠다. 6대와 7대 의장을 연임한 이효상이 대표적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국회의장을 낙점했다. 이른바 ‘낙하산 의장’ 시대가 한동안 지속됐다. 민주화 이후인 13대부터는 중립성이 강조되면서 당파성과 권한이 이전보다 많이 약해졌다. 14대 때는 정당 입김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장 당적이탈’을 명문화했다. 그러나 집권당과 대통령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어서 날치기 처리 관행은 여전했다.

대부분의 국회의장들은 최고통치자의 눈치를 살피고 방패막이나 거수기 역할을 자임했지만 제 나름대로 역할을 한 인물도 있다. 2대 민의원의장 신익희 선생은 지금까지 존경을 받는다. 그는 이승만 정권과 맞섰을 뿐만 아니라 공관을 나올 때 집 한 칸도 없을 만큼 청렴했다.

최근엔 청와대와 각을 세우고 있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노동 5법 등 ‘박근혜 대통령 관심법안’의 직권상정을 거부하면서다. “국회의원 밥그릇만 챙긴다” “통탄스럽고 답답하다” “국회의장으로 폼만 잡는다” “한번 해보자는 거냐”는 둥 대통령의 압박은 갈수록 거세고 친박 의원들의 비난은 원색적이다. 정 의장은 “삼권분립 위반” “직권상정을 할 만큼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다”라며 요지부동이다. 입법부 수장으로서 당연한 대응이다. ‘통법부’ 시대는 끝났다. 중립성과 자율성을 끝까지 지키는 국회의장의 리더십을 보고 싶다.



장정현 콘텐츠에디터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