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96년 5월21일 세계 전염병 사망 연 1700만명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한국 사회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발생 초기 방역에 실패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게 아닌지 우려가 될 정도다. 전염병은 늘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퇴치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신종 전염병이 출현한다.

경향신문은 1996년 5월21일 전 세계에서 1년에 전염병으로 숨지는 사람이 1700만명에 달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사망자가 많은 주요 전염병은 뎅기열(60만건 발병, 2만4000명 사망), 콜레라(38만4000건 발병, 1만1000명 사망), 디프테리아(10만건 발병, 8000명 사망), 에볼라출혈열(316건 발생, 245명 사망) 등이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한때 창궐했던 콜레라는 자취를 감췄다. 에볼라는 발생 건수는 적지만 치사율이 높아 아직도 공포의 전염병이다.


20세기에 많은 전염병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그 가운데 으뜸은 ‘20세기의 페스트’라고 불리는 스페인독감이다. 스페인독감은 1918년 스페인에서 발생해 확산됐다는 이유로 스페인독감으로 불린다.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면서 수천만명을 무덤으로 보냈다. 일반 독감의 사망률은 0.1% 정도지만 스페인독감은 2~20%에 달했다. 25주 만에 25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에이즈 발병 이후 25년간 사망자가 250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스페인독감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프랑스에 주둔하던 미군 병사가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전역에 퍼져 미군 2만4000명을 포함해 67만5000명이 숨졌다. 미국인 사망자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미군보다 10배나 많았다.

스페인독감은 아시아에 피해를 더 크게 미쳤다.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는 1700만명이 숨졌다. 당시 인도 인구의 5%에 달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740만명이 스페인독감에 걸렸고 이 중 14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학술지와 일제 경무총감부 자료에는 1918년 10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서반아 감기’(스페인독감)가 서울, 인천, 대구, 평양, 원산, 개성 등지에서 만연했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스페인독감은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전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매일신보는 당시 참상을 ‘농촌에서는 들녘의 익은 벼를 거두지 못할 정도로 상여행렬이 끊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독감으로 인해 학교가 일제히 휴교하고 회사도 휴업했다고 한다. <백범일지>에 “상해에서 돌아온 후 서반아감기로 20일 동안 치료했다”는 기록도 있다.

발달한 교통수단은 전염병을 더 많이, 더 빨리 실어 나르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상책은 방어, 차선책은 초기 박멸이다.


박종성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