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95년 12월 작가 신경숙 “‘외딴 방’에 들어가 나를 보았다”

“신경숙. 창작집 <풍금이 있던 자리>와 장편 <깊은 슬픔>을 발표하면서 문학성과 대중적 인기를 한꺼번에 인정받은 90년대의 대표적인 소설가 중의 한사람. 자전적 소설 <외딴 방>을 통해 그녀는 ‘63년 정읍 출생,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업’으로만 되어 있던 자신의 약력에 3년여 동안의 가리봉동 여공 시절이 생략돼 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지난 12월6일 여공 시절 다니던 모교를 찾아갔다. 그녀가 ‘공단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놀랐다. 출판사 편집진도 처음엔 ‘그냥 소설이겠지’라고 생각했을 정도. 서울서 고학하는 오빠들 뒷바라지를 위해 중학교만 마치고 상경. ‘18세 이연미’로 나이와 이름을 속여 동남전기에 입사. 공장에서 쉬는 시간이면 컨베이어 벨트에 공책을 놓고 좋아하는 작품을 통째로 베껴 옮겼다. 그 시절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문학수업이었다.”
 
20년 전인 1995년 12월12일자 경향신문 25면에 실린 “작가 신경숙, ‘외딴 방’에 들어가 나를 보았다”라는 제목의 기사 일부이다. 신경숙이 자전적 소설 <외딴 방>을 펴낸 이후 모교인 서울 영등포여고(야간부 산업체 특별학급)를 찾았을 때의 동행 취재기다.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우화’가 당선돼 등단한 그가 계간지 ‘문학동네’에 연재한 뒤 2권으로 묶어낸 <외딴 방>은 독자들의 관심과 평단의 상찬을 이끌어냈다.

 

 

1990년대 말 문단에서는 ‘63세대 4인방’이란 신조어가 회자됐다. 1963년생 여성작가 4명을 일컫는 ‘63세대 4인방’은 신경숙을 비롯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등을 펴낸 공지영, <피어라 수선화>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등을 출간한 공선옥, <칼날과 사랑> <먼길> 등으로 주목받은 김인숙이다. 각기 다른 문체와 문제의식으로 작품활동을 했던 이들은 1990년대 한국 소설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신경숙은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21세기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63세대 4인방’ 중 맨 앞에 섰다. 작품을 낼 때마다 평단은 “문체미학의 정수” “인간내면에 대한 깊은 탐구”라는 현란한 수사를 동원하며 그를 한국 문학의 중심부에 올려놓았다. 말수가 적고, 나서길 좋아하지 않는 신경숙은 사회적 발언을 꺼려왔다. 작품에서도 현실참여나 사회변혁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그가 ‘표절의 덫’에 걸렸다. 작가에게 표절은 치명적이다. 1994년 발표한 단편 ‘전설’의 일부 문장이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과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출판사 창비를 통한 그의 ‘표절 사실 부인’은 문단과 독자들의 거센 비난을 샀다. 지난 22일 경향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도 자숙과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는 애매한 해명으로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신경숙, 그는 ‘외딴 방’에 들어가 자신을 들여다본 뒤 넘어진 문학이란 땅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박구재 기획·문화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