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100년을 엿보다

(32) 미니스커트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신세계백화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한 가장 짧은 스커트 길이는 23㎝, 성인 남성 손바닥 한 뼘 정도였다. 올 여름도 미니스커트가 대세다. 젊은 여성을 위한 브랜드의 경우, 스커트 중 미니스커트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요즘 40대 여성들까지 과감히 허벅지를 드러내자 젊은 여성들의 스커트는 더욱 짧아지고 있다. 초미니, 마이크로미니를 지나 이젠 10억분의 1에 해당하는 과학용어를 빌린 ‘나노(nano) 미니’까지 등장했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활보하는 여성들을 보고 어르신들이 “아니, 왜 아랫도리는 벗고 다니는 거여?”라고 놀랄 만도 하다.


 


1970년대 한 경찰관이 미니스커트를 단속하기 위해 젊은 여성의 치마 길이를 자로 재고 있다.


패션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미니스커트가 탄생한 것은 1963년. 영국에서 진저그룹이란 급진적 패션그룹을 이끌던 디자이너 메리 콴트가 과감하게 짧은 길이의 스커트를 선보이면서부터다.
다리를 외설적인 것으로 여겨 한때 피아노 다리까지도 음심을 유발한다며 헝겊으로 감쌀 정도였으니, 미니스커트의 출현은 ‘도덕성을 잘라낸 옷’이란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듬해 프랑스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쥬가 파리컬렉션을 통해 미니스커트를 소개하면서 미니스커트는 전 세계에 급속도로 확산됐다.

우리나라에선 가수 윤복희씨가 67년 1월 미국에서 귀국하며 입은 미니스커트가 전국을 강타했다. 그해 3월 디자이너 박윤정씨는 세종호텔에서 미니스커트를 주제로 한 패션쇼를 열었고,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가늘고 곧은 다리를 가진 윤복희씨가 모델로 등장했다.
치렁치렁한 긴치마나 월남치마를 입던 여성들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했다. 주부 이정희씨(57)는 “대학에 다닐 때 엄격한 아버지 때문에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없어 가방에 넣고 나와 집 근처 빵집에서 갈아입곤 했다. 팬티가 보일락 말락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를 입은 요즘 여성들을 보면 눈에 거슬리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젊음과 긴 다리가 부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니스커트는 곧 시련을 맞았다. 73년 ‘경범죄 처벌법’이 생기고 무릎 위 15㎝가 ‘저속한 옷차림’의 커트라인이 되면서 미니스커트는 단속의 대상이 됐다.
경찰이 자를 들고 거리를 다니며 아가씨들의 치마 길이를 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급기야 73년 4월28일자 신문에는 광주에 사는 스무 살 아가씨가 첫 번째 단속대상이 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저속한 옷차림’을 규정한 이 조항은 이내 사문화되기는 했으나, 올림픽이 열린 88년 12월31일까지 존속했다.
2000년대 들어선 미니스커트가 유죄가 아니라, 미니스커트 차림 여성들을 휴대전화로 몰래 찍는 남성들이 처벌 대상이 됐다.

미니스커트는 경제학자들에게도 연구 대상이다. 미국 경제학자인 마브리는 ‘치마길이 이론(Skirt-length Theory)’을 펼치며 스커트 길이가 짧아지면 주가가 오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경제 호황이던 20년대 무릎 길이의 치마가 유행했고, 30년대의 세계 대공황 시기에는 치마 길이가 길어졌다.

하지만 완전히 상반되는 ‘불경기 미니’ 이론도 있다. 불황기에 위축된 소비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패션업계에서 다양한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다는 주장이다.

또 불경기에는 물자절약 차원에서 짧은 치마를 입는다는 주장도 팽팽하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옷감을 아끼기 위해 치마를 짧게 입으라는 법령을 제정하기도 했다.

숱한 비난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들은 미니스커트에 열광하는 것일까.

<서양패션의 역사>의 저자이며 패션에로티시즘을 주창한 패션심리학자 제임스 레버는 패션의 변천 배경을 ‘성감대의 이동’으로 설명한다. 30년대에는 엉덩이가 성감대였고 40년대에는 허리와 가슴이, 50년대에는 다시 엉덩이가 성감대가 됐는데, 60년대 맨살이 성감대로서 패션 유행을 이끌면서 가장 쉽게 살을 드러낼 수 있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했다는 주장이다.
그 어떤 법률도, 사회적 통념도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싶은 여성들의 욕망은 누르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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