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100년을 엿보다

(43) 만화가게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시작은 심부름이었다. 겨우 여섯살, 한글도 못 읽고 팔다리도 짧은 어린 여동생에게 오빠들은 “만화가게에 가서 이걸 빌려와”라며 만화 목록과 돈을 쥐어주었다.
오빠들의 조기교육(?) 덕분에 만화책 제목을 통해 더듬더듬 한글을 익혔고, 만화가게 주인 아저씨에게 착한 모습을 보이면 ‘오뎅(어묵꼬치)’도 얻어먹을 수 있다는 대인관계의 기본까지 체득했다.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이도영 화백의 만평이 1909년 6월2일자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것을 한국 만화의 효시로 꼽는다.

하지만 만화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고 대여도 해주는 만화가게가 대중화한 것은 50년대 후반부터다. 변변한 놀거리도, 공공도서실도 드물던 60~70년대엔 동네 만화가게가 아이들에게 유일한 문화공간이자 꿈의 장소였다.
요즘처럼 음습한 분위기에 성인만화가 가득한 곳이 아니었고, 무표정한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친절한 주인 아저씨나 아줌마가 신간을 안내해주고 간식도 팔았다. 중학교도 시험 쳐서 들어가던 시절, 단골학생이 명문학교에 합격하면 20권을 무료로 볼 수 있는 티켓을 축하선물로 줄 만큼 넉넉한 인심이 흐르는 곳이었다.

한국 만화의 전성기인 그 시절을 풍미한 만화는 산호의 <라이파이>, 김경언의 <칠성이와 깨막이>, 박기준의 <두통이>, 김종래의 <엄마 찾아 삼만리>, 추동성의 <짱구박사>, 박기당의 <어사 박문수>, 임창의 <땡이> 등이다.
여학생들은 민애니·엄희자·박수산 등 순정만화 작가들의 <엇갈린 모정> <유리의 성>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장르도 과학·역사·명랑 등으로 다양했고 독특한 그림체로 만화의 한 장면만 봐도 작가를 구별할 수 있었다.
<만화삼국지>로 유명한 고우영씨가 추동성이란 필명으로 그린 <짱구박사>의, 머리카락이 3개밖에 없는 무능한 발명가 짱구박사의 캐릭터를 그리는 것도 유행이었다.



 


2005년 1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세계 애니메이션 체험전에서
어린이들이 ‘추억의 만화방’에 모여 옛날 만화를 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만화책은 끝부분에 “만화작가가 되려는 문하생을 모집한다”는 구인광고부터 독자들이 보낸 만화를 소개해주는 코너까지 곁들여 일종의 잡지 역할도 했다. 아이들은 만화를 보며 과학자나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악인은 결국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교훈도 얻었다.
당시엔 검열이 지독해 비교육적인 단어를 못 쓰고 가난한 풍경도 묘사하지 못해 건강하고 교육적인 만화만 유통될 수 있었다.

만화가게는 만화만 보는 곳이 아니었다. 텔레비전이 귀중한 재산목록이던 그 무렵, 가게 주인집의 마루에 놓인 요술상자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큰 문화행사였다.
어떤 만화가게에선 만화 5권을 보면 가게의 텔레비전을 한 차례 시청할 수 있는 쿠폰(?)을 발행했고 김일·장영철·천규덕 등의 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에는 어른들도 슬금슬금 만화가게에 찾아들었다.
아이들은 세뱃돈을 받거나 친척이 와서 용돈을 준 날엔 지폐를 펄럭이며 만화가게로 달려갔다. 때로는 저녁 먹는 시간도 잊고 만화책에 몰두하다 찾아온 어머니에게 붙들려 가기도 했다.

집으로 끌려가면서도, 어른이 되면 만화가게 주인이 되어 이 재미있는 만화들을 눈치 안 보고 맘껏 읽어야겠다는 포부를 다졌다. 뿌연 알전구 불빛 아래서 등받이도 없는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몇 시간씩 만화를 봐도 왜 그때는 마냥 행복했을까.
왜 불후의 세계명작 주인공들은 기억나지 않는데 라이파이, 땡이, 민식이는 친구처럼 선명하게 떠오를까.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간 2010년의 만화가게는 많이 변해 있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의 아이들은 그곳에 없다. 학원 다니고 컴퓨터게임 하기에도 바쁜 아이들은 만화가게를 찾지 않는다. 부모가 사준 학습용 만화를 읽거나 인터넷에 연재되는 웹툰을 즐긴다.
대신 어른들이 만화가게를 점령했다. 서울역 등 역 부근의 만화가게는 대부분 24시간 운영되는데, 인조가죽 소파에 누운 어른들이 옆에 무협지나 성인만화 몇 권을 쌓아두고 라면을 끓여 먹다 만화책으로 얼굴을 덮고 잠을 청한다.
요금도 만화책의 권수가 아니라 시간을 기준으로 받는다. 아이들이 꿈을 키우던 만화가게가 꿈을 잃은 어른들의 피난처로 변한 모습은 씁쓸하다. 펼쳐본 만화들도 한결같이 재미없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렇게 꿈과 재미를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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